
김용화(47) 감독은 기어이 해내고야 말았다. 수년간 시각특수효과(VFX·Visual FX)에 심혈을 기울여 온 그가 다섯 번째 장편 ‘신과함께-죄와 벌’을 통해 한국영화계에 유의미한 이정표를 세웠다.
일단 스코어부터 괄목할 만하다. ‘신과함께’는 1400만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흥행 3위에 올랐다. 전작 ‘미스터 고’(2013)가 남긴 생채기 따위는 말끔히 씻긴 듯하다. 무엇보다 그가 이끄는 VFX 전문회사 덱스터 스튜디오의 기술력이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주호민 작가의 인기 동명 웹툰을 영화화한 ‘신과함께’는 개봉 전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샀다. 시나리오 각색 과정에서 주요 캐릭터가 사라지는 등 일부 설정이 바뀌면서 원작 팬들의 원성을 들었다. 규모나 장르, 제작방식 면에서도 모두 새로운 시도였기에 적잖은 리스크를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영화가 공개된 이후 작품 자체에 대한 호평이 나오면서 자발적 입소문으로 이어졌다. 하정우 차태현 주지훈 김향기 등 호감도 높은 출연진도 화제성을 끌어올리는 데 한몫했다. 특히 CG를 비롯한 VFX가 완성도 있게 그려짐으로써 한국형 판타지 블록버스터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얻었다.
전작에서의 쓴 경험이 그에게는 약이 된 셈이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김용화 감독은 “‘미스터 고’가 일깨워준 가르침이 있다. 영화는 기획이 반, 감정이 반이라는 것이다. 애들 영화를 만들어놓고 성공을 기대하면 안 되는 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고릴라가 야구한다는 기획을 했을까’ 싶다”고 털어놨다.
그렇기에 ‘신과함께’는 더욱 자신이 있었다. ‘사람의 이야기’를 담았기 때문이다. 영화적 구성에 보편적 정서를 덧대 대중이 좋아할 만한 작품을 만들었다. “독립예술영화면 제 마음대로 하면 되지만 상업영화는 다르잖아요. 여러 사람들을 공감시켜야 하죠. …모쪼록 관객과 소통했으면 합니다.” 그의 바람은 다행히, 그리고 완벽히 이뤄졌다.

-1, 2편 통합 제작비 400억원이 투입된 대작이라는 점에서 ‘신과함께’ 연출을 맡기까지 적잖은 고민이 있었을 법하다.
“처음에는 안 하려고 했어요. 잘해봤자 본전이니까. 일단 영화화하기에 적합한 웹툰이 아니었어요. 강력한 한 방보다 소시민을 구원하는 잔잔한 재미가 있는 작품이었죠. 그대로 영화화할 순 없어 시나리오 단계에서 6년간 답보 상태였어요. 원작의 정수를 얼마만큼 살릴 수 있을 것인가, 부담이 많이 됐어요. 하지만 기술적인 부분은 가능하단 생각이 들었죠. 지옥세계 비주얼을 재창조하는 등 부분에 있어선 자신 있었어요.”
-각색 과정에 굉장히 공을 들였다고 들었다.
“원작에서 감동이 있었던 부분은 일단 다 넣자는 생각이었어요. 예를 들어 수홍(김동욱)의 의문사에 관한 플롯은 반드시 넣고 싶었죠. 자홍(차태현)의 직업은 그리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지질하게 살아가던 소시민이 저승에 가서 구원을 받는다는 전체 얼개는 맞춰갔죠. 전체적으로는 저승과 이승이 평행구조로 가면서 서로 긴장과 압박을 주다 엔딩에서 결국 하나가 되면서 감정이 폭발하는 흐름을 생각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인 게 VFX 기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다양한 배경 위에 구현된 지옥세계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매우 힘들었지만 그래도 ‘미스터 고’ 때보다는 덜했어요(웃음). 이건 ‘반지의 제왕’ 같은 레퍼런스가 있잖아요. 어떻게 만드는지를 아는 거죠. 그리고 크리처(생물)를 만드는 건 우리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있거든요. 먼저 지옥 배경 그림들을 상의해서 일체감 있게 그려나가는 게 중요했어요. 타깃과 골(목표)이 정확하니까 덜 고생스러웠죠. 시간이 촉박해서 외주를 많이 내보냈는데 그게 엉망으로 돌아와서 결국 다시 작업해야 했어요. 그래서 시간적으로는 마지막 두 달이 가장 힘들었죠.”
-가장 구현하기 힘들었던 장면을 꼽는다면.
“칼날로 이뤄진 ‘검수림’ 액션신이 가장 어려웠어요. 후룸라이드를 타고 내려가는 장면인데 CG 결과가 안 좋게 나와서 원 소스 자체가 상해버렸어요. 처음부터 롤백(되돌리기)을 시켜야 하는데 그러기엔 시간이 부족했죠. 망가진 영상 위에 계속 작업을 하려니 너무 힘들었어요. 아쉬워요. 2편 때는 절대 외주 보내지 않고 (우리 회사에서) 다 할 거예요.”

-기술적인 부분뿐 아니라 드라마적인 면에서도 대중적 호평을 받았는데.
“제 경험을 떠올렸어요. 저희 어머니도 병으로 20여년간 고생하고 돌아가셨거든요. 제가 병원비 때문에 막노동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는 약해보이지 않으려 벽을 잡고 서계셨어요. 그런 생각밖에 안 나는 거예요. 전 마지막에 자홍이 과거를 고백하는 장면이 제일 슬프더라고요. 제 마음이 그러니까. 감정의 깊이를 어디까지 가느냐가 중요했는데,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깊게 간 이유는 원작에서도 천륜지옥이 가장 무섭고 피해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에요. 웹툰을 보면서 휘몰아쳤던 감정들을 그대로 살리고 싶었어요. 어머니가 말을 못한다는 설정도 실은 은유예요. 부모는 돌아가실 때까지도 자식의 허물을 얘기하지 않는다는 거죠.”
-일각에서는 신파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강제로 울리려고 느닷없는 플롯이 나오면 신파인 거죠. 하지만 우리는 초반부터 감정을 쌓아갔어요. 전반적인 톤 앤 매너로 자리 잡으면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어떻게 모두가 같은 얘기를 하겠어요. 어떤 분들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냐는 말도 하시더군요(웃음). 그렇지만 저는 10명 중 6명의 의견이 수렴하면 그걸 선택해요. 그게 중요한 거라고 봐요. 매니악해서는 안 되니까. 최대한 자연스럽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강림 역이 극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원작의 진기한 변호사 캐릭터 역할까지 소화해야 했으니.
“기본적으로 허들(장애물)이 많은 영화였어요. 판타지 장르에 저승차사라는 소재도 생소한데 저승세계의 변호사라는 설정까지. 관객에겐 그게 다 허들일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강림 캐릭터를 무게중심으로 잡고 영화를 끌고 가도록 했어요. 원작의 껄렁함을 지우는 대신 관객 친화적인 느낌을 더했죠. 하정우 배우가 그 역할을 훌륭히 해줬어요.”
-이 거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함에 있어서 하정우의 합류가 적잖은 힘이 됐을 것 같다. 작품 내적인 부분 말고도.
“천군만마죠. 시나리오를 보여줬더니 흔쾌히 하겠다고 말해줬어요. 대한민국 영화계에서 하정우라는 배우의 영향력은 엄청나잖아요. 작품 신뢰도 측면에서도 많은 부분을 결정하고요. 감사한 후배이자 절친한 동생이죠. 그런데 평소에 우리 둘이 노는 거 보면 미친놈들 같아요(웃음). 쓸 데 없는 소리만 하고 있고….”

-‘국가대표’(2009) 때의 하정우와 지금의 하정우를 비교해본다면.
“그때나 지금이나 정우는 현장에서 감독을 최고로 만들어주는 배우예요. 한참 농담을 하다가도 신 들어가면 딱 진지한 태도로 돌변하죠. 그리고 감독을 철저히 믿어줘요. 참 대단한 거 같아요. 신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의 자세나 태도를 보고 있으면 ‘저렇게 하니까 저 정도 하는 구나’ 싶어요. 엄청난 친구예요. 특히 자유로운 느낌의 리얼 연기를 할 때 하정우의 진면목이 드러나죠. 윤종빈 감독과 함께한 ‘비스티 보이즈’ 같은 작품들 보세요. 정말 장난 아니잖아요. 하정우의 매력이 충분히 드러나죠.”
-올여름 ‘신과함께2’를 개봉시키고 난 뒤 마블 창시자 스탠 리가 제작하는 할리우드 슈퍼 히어로물 ‘프로디 걸’을 연출할 계획이라고.
“스탠 리가 가장 아끼는 프로젝트라고 하더군요. 수퍼 히어로 양아버지와 친아버지 사이에서 갈등하는 아들의 이야기인데, 이런 정서와 감정을 좀 더 깊게 다루려면 아시아 감독이 적합하지 않겠냐는 생각에 제게 연출을 제안했대요. 처음엔 왜 저한테 제안에 왔을까도 신기하기도 했어요. 언어장벽도 있을 텐데 말이죠. 근데 굳이 미국영화를 하겠다면 이런 작품을 맡는 게 의미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지금의 마블 영화 같은 액션 활극은 굳이 제가 만들 필요가 없으니까요.”
-감독 커리어에 있어 꽤나 도전적인 경험이겠다.
“굉장히 큰 도전인데, 두렵진 않아요. 그들이 저를 원한 이유가 합리적이니까요. 그게 해결되지 않았다면 두려웠겠죠. 어쨌든 그들이 얼마나 샅샅이 조사를 했겠어요. 그 결과 제가 대중영화 만드는 감독 중에선 비교적 감정을 잘 다뤄낸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거죠. 그러니까 한번 해 볼만 하지 않을까요(웃음).”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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