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8월23일 새벽 3시45분경 의문의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천안 부근 비상 정차대에 세워진 8t 화물트럭의 후미에 승합차 한 대가 끼인 채 발견됐다.
승합차 운전자는 출동한 구조대에 의해 기적처럼 생명을 건졌지만 조수석의 아내는 그 자리에서 숨졌다. 사망한 아내는 캄보디아 출신 이주자로 임신 7개월의 25세 여성이었다.
그런데 승합차 조수석은 사고 충격으로 심하게 찌그러진데 반해 안전벨트를 매고 있지 않았다는 시신은 아무 외상없이 깨끗했다. 남편은 졸음 운전 탓에 사고가 났다고 밝혔지만 경찰은 CCTV에 찍힌 차량 추돌 전 영상을 분석한 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경찰 수사결과 숨진 아내의 혈흔에서 수면유도제 성분이 검출됐고, 남편이 아내 앞으로 26건의 보험에 가입한 사실을 밝혀냈다. 아내가 사망할 경우 남편은 보험금으로 98억원을 받게 돼 있었다.
법원은 1심에서 남편의 범죄 가능성을 시사하면서도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에서는 유죄로 판단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2년 가량 계속된 재판은 대법원에서 다시 뒤집혔다.
대법원은 30일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증거가 부족하고 살인 동기 등이 명확하지 않다”며 사건을 다시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남편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살인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남편 이모(47)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1심은 이씨 범행 가능성을 의심하면서도 살인 혐의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A씨 혈액과 이씨의 혈액에서 수면유도제 성분이 나란히 검출된 점, 사건 사고로 사망한 것이 틀림없는지 등 여러 의문점이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사고 당시 조수석 파손 부위가 운전석보다 많고 뒷바퀴가 11자로 나란히 정렬돼 충돌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이 졸음운전의 증거와 양립할 수 없다”며 “직접 증거가 없더라도 고의로 사고를 유발했다는 증거로 인정하기 충분하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어 아내 사망 시 수십억원의 보험금을 탈 수 있는 보험에 다수 가입하고 사고를 낸 점, 이씨가 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 '고속도로 사고' '어제 교통사고' 등을 검색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씨는 사고 당시 자산이 빚보다 상당히 많았고, 월 수익이 900만~1000만원에 이르렀다”며 살인 동기가 뚜렷하지 않다고 봤다.
이씨가 아내 보험금을 타낼 목적으로 사고를 낼 만큼 급하게 돈이 필요하지 않았던 점, 사망한 아내의 보험가입이 6년에 걸쳐 꾸준히 이뤄진 점, 이 사고를 고의로 낼 경우 본인에게 미칠 위험 정도도 매우 심각했던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대법원은 “졸음운전으로는 이 사건 사고 발생 당시 상황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보다 과학적이고 정밀한 분석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원심은 치밀하고도 철저한 검증없이 유죄를 인정했다”고 판시했다.
정지용 기자 jyjeo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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