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고수(39)는 결코 쉬운 선택을 하지 않는다. 변화무쌍한 그의 필모그래피만 봐도 알 수 있다. 고됨이 뻔히 보일지라도 기꺼이 그 길을 택한다. 자신에 대한 믿음, 그리고 연기에 대한 지극한 사랑 때문이다.
최근작들에선 도전의지가 더 짙게 베어난다. 조선시대 천재 디자이너로 변신한 ‘상의원’, 실종된 아이를 찾으려 분투하는 아버지를 연기한 ‘루시드 드림’ 등에서 그랬다. ‘석조저택 살인사건’에서는 그런 행보의 절정을 이뤘다. 로맨스 액션 스릴러까지, 작정이라도 한 듯 온갖 장르를 넘나들었다.
“남들이 안 하려는 걸 하는 것 같아요. 하하. 저는 단순하게 ‘(시나리오를) 재미있게 봤으니까 하고 싶어, 하자’ 이거거든요. 현장이 고되고 힘든 건 차후의 문제니까요. ‘고지전’(2011) 때는 촬영 전 지레 겁먹기도 했었지만(웃음). 그냥, 쉽게 가면 좀 뭔가 허전하고 밋밋한 느낌이 들어요.”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고수는 “평소에도 나를 혹사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래야 살아있음을 느낀다. 편하면 오히려 불안감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그래서인지) 극한 상황에 처한 인물에 더 관심이 가는 편이에요. 이젠 편한 역할도 괜찮지 않을까 싶긴 한데…. 그리고 보니 차기작 ‘남한산성’도 쉽진 않았네요. 하하.”
‘석조저택 살인사건’을 택한 이유 역시 “변화의 폭이 큰 새로운 캐릭터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국 추리소설 ‘이와 손톱’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피해자의 잘린 손가락만 남겨진 의문의 살인사건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다룬다. 극 중 고수는 유력한 용의자이자 경성 최고 재력가 남도진(김주혁)의 비밀을 파헤치려 분투하는 운전수 최승만 역을 맡았다.

“단순한 플롯이 아니어서 재미있었어요. 2년 전쯤 작품에 대해 처음 들었는데 무슨 내용일까 너무 궁금하더라고요. 그래서 시나리오를 찾아 읽어봤죠. 그리고서 감독님을 만나 먼저 제안을 했죠. ‘제가 하겠습니다’라고(웃음). 많은 이야기와 다양한 감정, 묘한 분위기가 있는 작품이어서 끌렸어요.”
사실상 1인2역을 소화해야 했다. 극 중 최승만은 본래 마술사였으나 사랑하는 여인(임화영)을 잃은 뒤 신분을 감추고 운전수로 살게 된 인물이다. 고수는 “영화에선 편집됐지만 최승만이 심리적 변화를 겪으며 자신을 숨기기 위해 외양을 바꿔가는 과정이 있었다”며 “그런 지점을 표현하는 게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막연히 ‘재미있겠다’는 생각에 겁도 없이 임했는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너무 어렵더라고요.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웃음). 현장에서 정말 고민 많이 하고 이야기도 많이 나눈 작품이에요. 그래서 관객들이 어떻게 보실지 더 궁금해요. 제가 이런 모습을 보여드린 적이 없으니까.”
활동 초기 고수는 로맨스 장르 드라마를 통해 주로 사랑받았다. ‘피아노’(2001) ‘순수의 시대’(2002) ‘그린 로즈’(2005)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이상 SBS·2009) 등이 여전히 그의 대표작으로 회자된다. 한동안 로코 혹은 멜로 출연이 뜸했던 터라 의아해하는 반응도 없지 않다. 그러나 “특별한 이유는 없다”는 게 그의 답이다.
“계속해서 새로운 걸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시대극이나 사극에서의 내 모습이 어떨지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고요. 이런 저런 시도를 해보는 중이에요. 경험이 제일 중요한 거니까요. 지금이 끝이 아니잖아요. 배우는 한두 작품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니까.”

고수는 “나중에 (나의 배우인생을) 돌아봤을 때 작품 수가 적으면 너무 속상할 거 같다”며 “할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하고 싶다. 결과가 어떻든 그렇게 해나가는 과정이 중요한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비현실적인 외모에 가려져있으나 고수는 사실, 참으로 소탈하고 진솔한 사람이다. 느릿느릿. 조곤조곤. 진정성이 묻어나는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연기를 향한 애정이 그득그득 담겨있다.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해요.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해야죠. 연기라는 건 관객들이 실제로 느끼기 어려운 감정들을 매체를 통해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직업이거든요. 그래서 재미있고, 책임감이 느껴져요.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죠.”
경력 20년차 배우인 고수는 “늘 부족하다. 끊임없이 배워가고 있다. ‘작품을 통해 관객들과 소통하는 방법이 있을 텐데 그게 뭘까’ 고민하며 지금까지 온 거 같다”고 얘기했다. “연기는 정답이 없으니까요. 해도 해도 어렵고, 아직도 할 게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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