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이장호(69)의 등장은 화려했다. 그의 나이 겨우 스물아홉 살이던 1974년 세상에 내놨던 데뷔작 ‘별들의 고향’은 46만 관객을 동원했다. 이전까지 한국 극장가에서의 최고 흥행작이 30만 관객을 모은 ‘미워도 다시 한 번’(1967)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작부터 엄청난 대박을 터뜨린 셈이다. 작품성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예컨대 한국영상자료원이 지난 1월 발표한 ‘한국영화 100선’엔 이장호의 연출작이 ‘별들의 고향’ ‘바람 불어 좋은 날’(1980) ‘바보 선언’(1983) 등 3편이나 됐다.
17일 개봉하는 영화 ‘시선’은 ‘천재 선언’(1995) 이후 이장호가 19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영화는 가상의 나라 ‘이스마르’로 선교를 떠난 한국인 8명과 이들의 가이드 겸 선교사 조요한(오광록)의 이야기를 그린다. 선교단은 이슬람 반군에 피랍돼 배교(背敎)를 강요당하며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이를 통해 이들은 자신의 나약한 신념과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확인한다.
최근 서울 중구 퇴계로 한 사무실에서 이장호를 만났다. 그는 ‘시선’을 ‘제2의 데뷔작’이라고 소개했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정력적인 모습이었다. 길게 기른 머리에 군화를 신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인터뷰 내내 가장 눈에 띄었던 건 커다란 십자가 목걸이였다. 그는 “내게 이제 영화는 일종의 사역”이라며 “복음의 씨를 뿌리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시선’은 이장호의 전작들을 기억하는 관객에겐 낯설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이전까지 나는 내 이기심을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 돈, 인기, 명예…. 이런 것들이 중요했다. 전부 관객의 물욕과 욕정을 자극하는 작품들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이 장기간에 걸쳐 나의 잘못된 시각을 바꿔놓으셨다. 성경에 육체의 생각은 사망이고 정신의 생각은 영생이라는 메시지가 있지 않나. 내가 지금까지 만든 작품들은 죄다 ‘사망의 영화’였다. ‘시선’이야말로 내 영화 인생의 시작이다.”
-너무 오랜 기간 작품 활동이 없었는데.
“영화 찍는 걸 일부러 피했던 건 아니다. 과거엔 영화를 만드는 게 누워서 떡먹기보다 쉬웠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모든 일이 쉽게 진행되지 않았다. 연출 계약을 맺는 일도 어려웠다. 영화감독으로서 위기가 찾아왔고, 내가 올랐던 정상의 자리에 다른 감독들이 서 있는 걸 보며 엄청난 열등감과 절망감을 느꼈다. 그러다 결국엔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아, 하나님이 내가 영화를 만드는 걸 더 이상 원치 않으시는구나.’ 돈독이 올라 타락해 있던 시절엔 느끼지 못했던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됐다.”
-영화엔 선교단이 피랍되자 국내 각 교회에서 이들을 위해 예배를 여는 모습이 나온다. 인상적인 건 이런 장면에서 스크린 하단에 새겨지는 자막이다. ‘(납치된 선교단을) 그냥 죽여 버려라. 교회에서 헌금 걷어서 구해오든가’ 같은 네티즌의 악성 댓글이 자막을 통해 등장한다.
“안티 크리스천을 보면 정말 안타깝다. ‘왜 먹고 사는 일에만 집중할까’ ‘정치적 이념이 그렇게 중요할까’ 같은 생각을 자주 하게 만든다. 기독교인이 하나님의 뜻을 좇을 때 안티 크리스천은 이를 이해하지 못한 채 기독교인을 비난하기만 한다. 이런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논란이 될 만한 내용도 없진 않다. 가령 목사인 구민영(남동하)은 반군으로부터 선교단원을 살리려면 성경을 칼로 난도질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결국 구민영은 성경을 칼로 내려치게 되는데.
“하나님의 시선은 율법을 엄격히 지키느냐 아니냐에 머물러 있지 않다. (사람의 목숨이 달린 상황에서도) 성경책 자체를 신성시해야 한다는, 그런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여기는 게 인간의 한계다.”
-‘시선’이 기독교인이 아닌 관객에게도 어필할 수 있을까.
“영화를 본 사람 중에 강우석 감독과 봉준호 감독이 있는데, 두 사람 모두 비(非) 크리스천이다. 그런데 둘 다 영화를 본 뒤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하더라.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도 감동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라고 자부한다. 난 이 영화가 개봉과 동시에 크게 히트하는 걸 바라지 않는다. 이제 난 돈독이 올라있는 사람이 아니다. 단기간에 성공을 거두진 못하더라도 10년, 20년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찾아보다 결국엔 수천만 명이 ‘시선’을 보게 될 것이다. 그게 하나님의 뜻 아닐까.”
-데뷔한 지 올해로 40년이 됐다.
“청소년기에 나는 열등감이 많은 소년이었다. 하지만 (초·중·고교 동창인) 고(故) 최인호 작가 같은 좋은 친구를 만나 최인호가 쓴 ‘별들의 고향’을 영화화하는 기회를 잡게 됐다. 작품이 크게 성공하면서 열등감이 사라지고 교만해졌다. 그러다 슬럼프가 찾아왔다. 하나님이 나를 밑바닥부터 다시 훈련시키기 위해 광야로 내쫓으셨던 거다. 앞으로는 기독교 메시지가 녹아있는 작품만 만들겠다. 세상 사람들을 유익하게 영화, 오로지 이타심만 가지고 만드는 작품, 그런 영화들을 선보이겠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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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만에 신작 ‘시선’ 선보이는 이장호 감독 “내게 영화는 복음의 씨를 뿌리는 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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