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유교는 권력이 아닌 백성을 위한 매뉴얼
500년 공동체를 움직인 유교의 힘/한형조·오항녕 외/글항아리
지난해 ‘우리에게 유교는 무엇인가’를 펴낸 배병삼 영산대 교수는 “유교에 대한 비평은 있었지만 유교가 제 목소리로 발언한 적은 거의 없었다”며 유교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시선에 불만을 토로했다. 당시 그는 유교의 대표 가치로 알려진 위민(爲民), 민본주의(民本主義), 충효(忠孝) 등의 개념이 유교의 본질이 아님을 조목조목 밝히며 유교 다시 읽기를 제안했다. 이후 한국 근대화의 걸림돌처럼 여겨졌던 유교의 역할을 재조명하자는 목소리가 조금씩 힘을 얻고 있다.
이 책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내고 유지할 수 있는 ‘무언가’가 사라진 상황에서 지난 500년간 조선시대를 지켜왔던 유교에서 답을 찾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한형조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학부 교수, 박원재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 오항녕 전주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김상준 경희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 등 유교 전문 연구가들이 1년 가까이 유교적 공동체론의 현대적 접목 가능성을 탐색하며 공동 작업한 결과물이다.
한형조 교수는 “유교가 ‘전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라는 가르침을 줬다는 것이야말로 유교를 왜곡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오히려 유교는 기성 권력이 아니라 백성이라는 대중을 생각했으며 집단 논리에 매몰되지 않고 인류 보편적 관점에서 사고했다는 것이다. 특히 조선의 유학은 병들어 있는 개인의 유해한 욕망들을 극복하기 위해 실제 마음을 훈련하기 위한 실용적 매뉴얼로 재편됐음에 주목한다. 대표적인 예로 퇴계 이황의 ‘천명도설’과 ‘성학십도’, 율곡 이이의 ‘격몽요결’과 ‘성학집요’를 들고 있다.
김상준 교수는 유교 문화권에서 나타난 상평창, 환곡, 사창 등으로 나타나는 ‘창름(곡식창고)’을 통해 서양과 다르게 존재했던 복지제도를 읽어낸다. “유교의 공(公) 사상의 요체는 모든 사람을 공평하고 부양하게 돌보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실천적 태도에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조선의 ‘환곡’은 국가가 곡식을 구축했다가 흉년이나 수해로 곡가가 높거나 낮아졌을 때 농민들에게 민간 향촌 대부업자들에 비해 아주 낮은 이율로 빌려줬던 제도다. 우리는 조선 후기 정부 관료들이 농민들을 상대로 높은 이율로 곡식을 빌려주며 사익을 취했던 폐해 때문에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이 제도는 종교적 열정 수준에 가까운 유교의 양민 사상이 낳은, 일종의 사회 보장 제도였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유교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지를 브라질의 빈곤층 현금지급정책 ‘보우사 파밀리아’를 통해 모색한다.
김 교수는 “보우사 파밀리아의 취지와 실행 과정은 상평창, 환곡, 사창을 연상시키는 바가 많다”며 “실제로 결핍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정확하고 바른 방법으로 지원이 갈 수 있느냐가 관건이며 유교사회의 구민제도 입안자와 실행자들이 늘 고민했던 지점이 바로 이것”이라고 말한다.
박원재 교수는 유교적 규범론을 통해 서양 윤리학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지를 모색한다. 서양의 이성중심주의적 윤리학이 인간의 감성을 배제함으로써 생기는 문제들을 ‘사단(四端)’을 통해 풀 수 있다고 본다. 그는 모든 인간이 갖고 태어나는 인지상정인 사단이야말로 보편적 감정이며 이것을 감정이라고 억제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인간은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은 이성으로는 주어지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은 의지의 문제라는 점에서 감성의 문제라는 것이다.
“유교의 성인들은 감성의 이러한 특성을 간파한 사람들이다. 이런 점에서 이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도덕 준칙의 논리적 정합성(情合性)이 아니라 감성적 정합성이었다. 즉 합리성(合理性)보다 합정성(合情性)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도덕규범이 출발점에 대한 유교의 이런 시각은 자유주의 이후 윤리학의 새로운 행로를 모색하는 여정에서 의미 있는 자양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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