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흥우] 현대판 龍袍

계급질서가 엄격했던 과거에는 옷 색깔로 사람의 신분을 가늠할 수 있었다. 동양에서는 노란색, 서양에선 보라색이 단연 으뜸이었다. 황제의 색이기 때문이다. 중국 황제는 노란색 용포(龍袍)를, 로마제국 황제는 보라색 토가와 튜니카를 입었다. 황제 아닌 다른 사람이 입었다간 중벌로 다스려졌다.

음양오행에서 ‘황(黃)’은 정중앙을 상징하는 색이다. 그래서 노란색은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색이 됐다. 로마시대에는 보라색 염료 구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천연물질에서 추출하는 과정이 까다롭고 힘들기 이를 데 없어 보라색 염료는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엄청 고가였다고 한다. 이 시대 최고 명품은 노란색, 보라색 제품이었을 것이다.

시대가 바뀌어 어떤 색의 옷을 입어도 시비의 대상이 되지 않는 세상이 됐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마치 황제의 삶을 꿈꾸듯 온갖 명품으로 치장해 남에게 자신을 과시하려는 ‘된장인’들이 넘쳐난다. 명품(luxury)과 폭발(explosion)을 합친 ‘럭스플로전(luxplosion)’이란 신조어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다.

성인들의 명품병이 이제 어린이와 청소년에게도 빠른 속도로 전염되고 있다. 지난해 서울 강남구 일대 초등학생들이 50만원 넘는 백금샤프를 쓴다고 해서 한바탕 논란이 일더니 올해는 ‘캐몽’ 열풍으로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캐몽은 캐나다의 두 유명 구스다운 패딩 제조업체 앞 글자를 딴 합성어다. 이들 패딩 가격이 최저 100만원 이상이고 어떤 제품은 300만원을 훌쩍 넘는데도 없어서 못 살만큼 청소년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캐몽을 입었느냐 아니냐에 따라, 입었으면 가격이 얼마짜리냐에 따라 학생 서열을 나눈다고 하니 현대판 용포라 할 만하다.

남들보다 돋보이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그만한 값어치를 한다면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고가의 제품을 살 수 있다. 그렇게 해야 해당 산업도 발전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팔리는 외국 명품은 현지에 비해 비싸도 너무 비싸다. 외려 가격을 높게 책정해야 더 잘 팔리는 비상식이 일반화된 지 오래다. ‘일류병’으로 대변되는 지나친 과시욕 때문에 한국인이 외국업체의 봉이 된 게 아닌지 돌아볼 시점이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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