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노트-오인숙] 오래 살아야 해

산골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발음이 어눌해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이 들었다. 그녀는 뇌출혈로 쓰러져 투병 중이었고 그녀의 남편은 암 투병 중이었는데 전화를 한 것이다. 그녀는 온 힘을 다해 내게 개똥쑥 복용에 대해 설명하려고 애를 썼고 그 남편은 그녀와 번갈아가며 그녀의 말을 내게 통역하고 있었다. 개똥쑥이 좋다고 해서 네게 보내니 어찌어찌 하여 먹으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나의 고등학교 친구였다. 각별히 친한 사이도 아니었는데 내가 암으로 투병 중일 때 어찌 소식을 들었는지 시골에서 생산되는 자연식으로 좋다는 것들을 보내온 후 매해 백김치, 된장, 나물 등 좋다는 것은 다 챙겨 보내오곤 했다. 그녀는 자신의 삶처럼 투박한 말로 보내는 물건의 용도를 “몸에 좋단다. 그래서 보낸다”고 말했다. 친구의 정성을 값없이 넙적넙적 받아먹기가 미안해 안 보내도 괜찮다고 하면 그녀는 언제나 같은 말을 한마디하고 전화를 끊곤 했다. “너 같은 아이가 오래 살아야 해”란 말이었다. 병 중인 그녀와 남편이 올해도 몸에 좋다는 개똥쑥을 보내겠으니 먹으라는 전화 끝에 “너 같은 아이가 오래 살아야 해”라고 했다. 그 친구에게 전화가 올 때마다 듣는 말이었지만 올해는 병든 친구의 그 말이 가슴에 들어와 박힌다. 그 친구가 생각하는 나는 어떤 사람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내가 오래 살아야 하는 이유를 그녀는 한 번도 내게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친구는 마치 나를 오래 살게 해야 한다는 책임의식을 가진 사람처럼 나름 좋다는 것을 챙겨서 보내곤 했다. 늘 받는 데 익숙해 그러려니 하고 받는 나 같은 부류의 사람과 병들어 힘겨워진 몸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를 위해 이것저것 챙기는 친구부부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 누가 더 오래 살아야 할까?

나는 친구에게 “너 같은 아이가 오래 살아야 해”라는 말을 되돌려 주고 싶었다. 우리는 서로가 오래 살아야 할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깊어가는 가을 날 친구 부부가 오래 살기를 기도한다.

오인숙(치유상담교육연구원 교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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