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경호] 화성인 침공

1938년 10월 30일 저녁 8시. 미국 CBS는 시추에이션 드라마 ‘머큐리극장’ 중 공상과학극 ‘세계들의 전쟁’을 방송하기 시작했다. 아나운서는 “지금부터 H.G 웰스의 ‘세계들의 전쟁’ 방송극을 들려드리겠다”고 말했다. 12분 후 아나운서는 급박한 목소리로 “운석으로 추정되는 거대 물체가 뉴저지주 크로버 시내 공장 마당에 떨어졌다”면서 “화성인들이 괴상한 머리를 내밀고 나타났다”고 전했다. 잠시 후 “우주선에서 내린 화성인들이 괴상한 무기로 미군을 공격하고 뉴욕을 점령했다”고 말했다. 다시 “미국 내무부 장관 육성”이라며 “국가가 중대한 상황에 당면했으니 지구상에서 인류의 생존을 위해 공격에 대항해 달라”는 대국민담화문을 방송했다. 물론 중간에 “여러분은 지금 ‘세계들의 전쟁’ 방송극을 듣고 계신다”라고 가상극임을 강조했다. 45분간 ‘화성인의 지구침공’극은 순조롭게 방송됐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실제라고 믿은 청취자들이 패닉에 빠져 버린 것이다. ‘지구 종말이 다가왔다’면서 가족을 찾는 이들로 전화선이 불통되고 도로와 버스터미널은 피난인파로 붐볐다. 음독하거나 기도원으로 떠나는 이도 있었다. 단순정전도, 공사소음도 화성인 공격 탓으로 돌렸다. 방송 청취자 600만명 중 100만명이나 소동을 벌였다고 한다. 뒤늦게 사태는 진정됐지만 CBS는 물론 미국사회는 극심한 후유증을 겪어야 했다.

화성인이 지구를 침공했다? 웃음 나오는 이런 황당한 허구를 미국인들은 왜 믿었을까. 프린스턴대 라디오연구소가 사회심리학적 요인에 대한 연구를 실시한 결과 ‘신생매체인 라디오는 진실을 말한다’는 청취자의 맹목적 믿음, 지겨운 경제공황, 2차 세계대전 발발의 불안감, 방송사의 교묘한 드라마식 내레이션이 복합 작용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10년 후 연구결과는 ’화성침공‘(The Invasion from Mars)으로 출간됐다.

국정원 트윗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초창기 라디오 못지않게 트위터는 영향력이 있다고들 한다. 하루 수천만 건의 트윗에는 사실과 거짓이 욕설·비방과 뒤섞여 돌아다닌다. 국정원과 군사이버사령부가 댓글과 트윗으로 대선에 개입했다고 여야가 난타전을 벌이고 있다. 과연 트윗은 대선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아직 과학적으로 검증된 연구결과는 없다. ‘트윗은 대선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가설만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화성인 지구침공 같은 황당한 뉴스가 트위터에선 진실로 통하는 웃지 못할 일들이 너무 많다.

김경호 논설위원 kyungh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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