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비명을 직관으로 잡아챈 ‘몸의 시학’… 이영광 네번째 시집 나무는 간다

몸으로 시를 쓴다는 말이 있다. 시인 김수영(1921∼1968)의 ‘온몸의 시학’ 이래 이 말은 현대시 창작의 저본처럼 여겨져 왔지만 사실 ‘시는 곧 몸’이라는 등식은 어제오늘의 풍문이 아니다. 시는 인간의 후형질적인 이성이나 경험과는 무관하게 우리가 몸을 갖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서 비롯될 수밖에 없다. 이걸 일컬어 ‘몸의 감수성’ 혹은 ‘몸의 시학’이라고 할 때 오늘날 그 전위에 서 있는 시인이 이영광(48)이다. 그의 네 번째 시집 ‘나무는 간다’(창비)는 몸 바깥으로 새어나가지 못한 짐승(자연)의 비명을 직관으로 잡아챈 강렬한 언어를 보여준다.

“나무는 미친다 미치면서 간다 육박하고 뒤엉키고 침투하고 뒤섞이는 공중의 결승선(決勝線)에서, 나무는 문득, 질주를 멈추고 아득히 정신을 잃는다 미친 나무는 푸르다 다 미친 숲은 푸르다 나무는 나무에게로 가버렸다 나무들은 나무들에게로 가버렸다 모두 서로에게로, 깊이깊이 사라져버렸다(‘나무는 간다’ 부분)

어떤가. 비릿한 짐승(자연)의 냄새가 풍겨오지 않은가. 가슴 밑바닥에 고인 감정을 뽑아 올려 자신의 몸을 통과시키고 있지 않은가. 여기서 ‘나무는 간다’라는 말과 ‘나무는 미친다’라는 말은 동일한 의미나 마찬가지다. 나무는 미친 듯 흔들리고 미친 듯 푸르며 미친 듯 가버리고 없다. 어제까지 초록이던 잎이 내일이면 갈색으로 물들고 모레쯤엔 가버리고 없는 것이다. 이런 변화를 일컬어 ‘미친다’고 했을 터. 이 모든 과정이 ‘죽음에 뚫리는 그것’이리라. ‘나무는 간다, 나무는 간다’를 반복해서 중얼거리다 보면 마치 기도문 같이 느껴진다. 그것은 의식 세계에서 무의식의 영토로 들어가는 주문이기도 하다.

“나의 기도는/ 기도하지 않는/ 기도이다/ 기도할 수 없는 기도이다/ 주저앉는 기도이다/ 뭉개지는 기도이다/ 사람의,/ 사람이 짓는/ 사람이 어쩔 수 있을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하여/ 기도는 말이 없다/ 언제나 경악보다 먼저 와서,/ 두려움보다 슬픔보다 분노보다 먼저 와서/ 두 손을 모으려 하는 나를/ 무슨 말을 떠올리려 하는 나를/ 단숨에 찔러버린다”(‘기도’ 부분)

기도를 하는데 기도에 개입하는 것들이 있다. 그건 우리가 기도를 말로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말은 말에 의해 무너진다. 말에 말이 개입하는 것이다. 진정한 기도는 말이 없다. 입이 없다. 입 없는 기도, 말 없는 기도만이 영육을 살린다. 기도는 말의 논리가 아니다. 기도는 ‘죽음에서 부활을 보는’ 기도여야 한다. 문학평론가 함돈균은 시집 해설에서 “기도보다 먼저 온 기도를 영접하기 위한 매개가 바로 이영광의 몸”이라며 이렇게 지적한다. “야훼는 기도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라고 가르쳤다. 그건 ‘나’조차 ‘모르는’ 기도여야 한다는 뜻이다.”

‘나무는 간다’에 깃든 주술성과 ‘기도’에서 드러나는, 말 없는 기도를 겹쳐놓고 보았을 때, 이영광의 시적 성취는 확실히 절정을 지나고 있는 듯하다. 그가 쓴 ‘시인의 말’도 맛있게 읽힌다. “말이 안 나오는 곳에서 자주 힘없이 막히며 나는 이 시들을 비교적 짧은 시간에 천천히 썼다. 더 잘 더듬거리려고 애쓰는 이상한 말더듬이가 되어.” 진정한 시는 무의식의 영토에서 나온다 할 때, 그 영토에 사는 시민들은 이상한 말더듬이들인 것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