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5월의 슬픈 아이들] (④·끝) 스리랑카 난민 임시 거처 - 절망 속 희망 찾기

“내전에 다리 잃었지만 의사 꿈 잃어버릴 수 없어요”

스리랑카 내전 종식을 한 달여 앞둔 2009년 4월 4일. 4년여의 세월이 흘렀지만 소녀는 이날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13살이었던 사타시람 디로기니(17)는 아버지와 함께 길을 가던 중이었다. 갑자기 비 오듯 폭탄이 쏟아졌다. 아버지와 함께 참호 속으로 몸을 피했다. 귀가 멍멍해졌다. 폭탄이 참호를 덮친 것.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숨졌다. 사타시람은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왼쪽 다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남은 다리에도 파편이 30여 군데나 박혔다.

지난 7일 스리랑카 북동부 물라티브에 있는 귀환민(Returnee) 임시 거처를 찾았을 때 소녀는 목발을 짚고 우리를 맞았다. 귀환민은 전쟁 등 각종 무력 분쟁과 폭력사태, 재해 등으로 나라 안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국내난민(Internally Displacement Person·IDP)이 자신의 거주지 근처로 돌아간 사람을 말한다. 국경을 벗어난 일반적 난민(Refugee)과 달리 국제사회의 보호를 체계적으로 받지 못한다. 지난달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국내난민감시센터(IDMC)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IDP는 전 세계적으로 2880만명에 달했다. 사타시람도 IDP에서 NGO 등의 도움으로 자신의 거주지 근처로 귀환한 사람 중 하나다.



인도양의 습한 바닷바람과 태양열로 3∼4평 남짓한 임시 거처는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 코코넛 잎으로 사방을 가린 벽과 슬레이트지붕, 침대 1칸에 가재도구도 없이 오빠를 비롯해 엄마, 동생 등 4명이 함께 살고 있었다.



그나마 천막 캠프에서 지난해 2월 구호단체가 마련해준 이곳 임시거처로 오면서 삶은 많이 나아졌다. 화장실에 우물도 생겼으니 말이다. 유엔아동기금(UNICEF)에 따르면 70억명의 세계 인구 중 24억명은 수세식 화장실이 없다. 또 매일 5세 이하 어린이 1800명이 오염된 물과 불결한 위생으로 사망한다.





“아빠요. 아빠가 보고 싶어요.”

짙은 눈썹에 큰 눈망울을 가진 소녀는 전쟁 통에 아빠를 잃은 뒤 언제나 아빠가 그리웠다. 전쟁 통에 외상 후 장애증상을 보이는 엄마 곁을 언제나 떠나지 않으려 했다.



다리에 박힌 파편으로 욱신욱신하는 몸을 이끌고 치료를 받으러 시내에 있는 병원에 가야 하지만 한 달에 2000루피(약 1만8000원)나 하는 택시비가 큰 부담이다.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오빠는 막노동으로 하루에 800루피(약 7200원)를 버는 것이 전부다. 그나마 일할 수 있는 날도 한 달에 20일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사타시람은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타밀어를 공부해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의사가 되고 싶어요. 이곳에서 고통 받는 사람을 위해 도움을 주고 싶거든요.”



그는 올해 말 국가시험에 도전한다. 몸이 불편해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지만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이다. 지난 3월 생일을 앞두고 벽에 직접 쓴 ‘wish you happy birthday’란 영어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의 삶은 이 문구처럼 의사가 돼서 행복한 생일을 맞을 수 있을까.



사타시람과 달리 카라이첼반 마타반(18)은 시종 어두웠다. 내전 당시 15세로 한창 커야 할 나이였던 소년은 제대로 먹지 못해서인지 왜소한 체격이었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제대로 공부도 마치지 못한 그는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작은 고깃배를 타고 바다에서 게나 새우, 물고기를 잡아 어시장에 팔아 생계를 이어갔다. 벌어들이는 돈은 하루에 겨우 400루피(약 3600원) 안팎. 또래 친구처럼 학교에 가고 싶지 않냐는 질문에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가족을 보살펴야 해서 그런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고 힘없이 말했다.



그나마 그가 내전 기간 소년병으로 징집되지 않고 배를 탈 수 있었던 것은 남동생이 다쳐 치료를 위해 전장을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타밀반군(LTTE)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킬리노치와 물라티브에서는 소년병 징집이 한창이었다. 종교적 차이 등을 이유로 스리랑카로부터 분리 독립을 요구한 LTTE는 전세가 불리해지자 아이들을 무차별로 데려갔다. 특히 2009년 1월 정부군의 공세가 강화돼 킬리노치가 함락되자 LTTE는 물라티브 일대에서 최후의 항전을 벌였다. 이 때문에 이곳은 스리랑카 중앙정부가 직접 통치하고 있다. 또 소요를 우려해 58사단을 비롯해 곳곳에 부대가 주둔해 있어 삼엄한 분위기다.

카라이첼반이 사는 곳은 2011년 정부가 마련해 준 거처로 겨우 비와 더위만 피할 정도다. 누워서 잠을 청할 침대도 없다. 가족 모두 맨 바닥에 모포를 깔고 짐승처럼 잠을 청한다. 정실질환을 앓고 있는 어머니는 살림을 할 수 없어 그가 모든 것을 책임지고 있다.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4명의 동생이 모두 좋은 환경에서 자라는 것이 꿈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는 취재진과의 인터뷰를 위해 이날 바다일도 포기하고 자신이 가진 가장 좋은 옷을 입은 듯했다.



카라이첼반을 뒤로 하고 킬리노치시 카라치치구에 있는 칼라이바니 유치원에 들렀다. 월드비전이 설립한 이곳은 주로 3∼5세 어린이들이 다니는 곳으로 아침 8시에서 오후 1시까지 수업이 이뤄진다. 5∼6평쯤 되는 교실에는 25명의 아이들과 교사 3명이 30도가 넘는 더위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학생 대부분은 내전 중 또는 내전 이후 태어난 아이들로 제대로 된 공교육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교사인 비노디니(23·여)씨가 그림책에 있는 동물 모양을 보여주자 아이들은 울음 흉내를 냈다. 또 칠판에 숫자 ‘1’을 쓰자 타밀어로 ‘온드루(ondru)’라고 말했다. 몇 살이냐고 묻자 다누선군은 “4살요”라고 귀엽게 말했다. 월드비전은 내전으로 상처를 입은 아이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일상생활로 돌아오도록 하고 있다.



비노디니씨는 “아이들을 위험에서 보호하기 위한 펜스가 필요하다”며 “더위에 선풍기를 틀고 싶어도 전기가 없고 전기료를 낼 돈도 없다”고 현실을 소개했다. 월드비전 스리랑카 인도지원팀의 라신두 데멜(32·여)도 “이곳은 그나마 형편이 좋은 곳”이라며 “이들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월드비전의 목표”라고 말했다.



미셸 시즌 스리랑카 주재 미국 대사는 지난 6일 수도 콜롬보에서 아동개발 및 여성증진부의 티사 카라리야데 장관을 만나 카라치치구 아이를 위한 놀이공원 보수에 사용하도록 9만7925달러를 기증했다.



킬리노치·물라티브(스리랑카)=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

[월드비전 후원신청 : 1666-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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