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나루] 48년 시차두고… 한국의 父女대통령 모시는 블레어 하우스

박근혜 대통령이 48년 전 선친이 묵었던 미국 숙소에서 머물게 됐다. 박 대통령이 6일 밤(이하 현지시간)부터 워싱턴에서 2박3일 동안 지내게 된 ‘블레어 하우스(Blair House·사진)’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미국을 공식 방문하면서 투숙했던 곳이다.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구상 중이던 박 전 대통령은 1965년 미국에서 보내준 대통령 전용기 보잉707을 타고 출국했다. 한국 국적 항공사가 프로펠러기 몇 대를 가지고 있던 게 전부였던 시절 박 전 대통령은 미국 전용기의 첨단 교신장비에 감탄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륙한 지 1시간 만에 무선전화로 청와대에 남아 있던 박 대통령과 안부를 주고받았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미국에 도착한 박 전 대통령은 블레어 하우스에 여장을 푼 뒤 린든 존슨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과학기술 도입과 경제원조 등을 요청했다.

반세기의 시간이 흘러 자국 항공기로 출장도 못 갔던 대통령의 ‘큰 딸’ 박 대통령이 다시 미국을 방문하고 블레어 하우스를 찾는다.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나는 조국의 국력과 위상을 실감하면서도 아버지와 같은 숙소에 머무르는 박 대통령은 만감이 교차할 듯싶다.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5일 오후 “한·미 동맹의 과거와 미래를 잇는 상징성이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국의 부녀(父女) 대통령이 대를 이어 머무른 기록을 세우게 된 블레어 하우스는 미 정부가 외국 정상에게 제공하는 공식 영빈관이다. 워싱턴 펜실베이니아가(街)에 있는 타운하우스 형태의 건물 4채로 백악관과 대로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은 박 전 대통령 이후에도 워싱턴 방문 시 블레어 하우스를 이용해 왔다. 본관은 1824년 개인주택으로 건립됐으나 1836년에 앤드루 잭슨 전 대통령의 자문역이자 신문편집인이었던 프란시스 프레스턴 블레어에게 팔린 뒤 블레어 하우스라 이름이 붙여졌다. 미 정부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 재임 기간인 1942년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해 외국 귀빈들의 방문이 잇따르자 공식 영빈관을 마련할 필요성에 이 건물을 사들였다.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 시절에는 백악관 보수공사로 인해 대통령 집무실 겸 거처로 이용되기도 했다. ‘트루먼 선언’과 2차 대전 전후 유럽재건을 위한 ‘마셜 플랜’이 탄생한 장소다. 1992년 우루과이라운드 농산물 협정 초안 가운데 보조금 감축 등에 관한 미국과 유럽공동체(EC)의 협상이 이곳에서 타결돼 ‘블레어 하우스 협정’이라고 불렸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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