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 병역면제] 겉보기엔 멀쩡 ‘그것이 알고싶다’

199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장·차남 병역 의혹이 제기됐다. 두 아들이 징병검사에서 현역판정을 받았다가 나중에 체중미달로 면제받은 일이 문제가 됐다. ‘병풍’이었다. 그는 16대 대선에서도 ‘김대업 리스트’라는 ‘2차 병풍’에 또 한번 발목이 잡혔다. 2001년에는 130여명에 달하는 사회지도층 인사의 병역비리가 적발됐다. 사상 최대 병역비리라는 ‘박노항 원사’ 사건이다. 아들을 군대 보내고 가슴 졸이는 국민의 분노를 샀다. 이후 청문회 때마다 불거지는 고위공직자들의 병역 의혹은 국민들에게 허탈감을 안겨줬다.

◇총리들의 병역 의혹 수난사=박근혜 당선인이 지명했던 김용준 정홍원 두 총리 후보자와 그들의 자제 5명 중 4명이 군 복무를 하지 않았다. 김용준 전 후보자는 소아마비 장애로 병역을 면제받았다. 그의 장남은 89년 8월 체중미달로, 차남은 89년 5월 2급 현역 입영 대상 판정을 받은 뒤 94년 7월 통풍으로 면제받았다. 정홍원 후보자의 아들은 97년 4월 신체검사에서 1급 현역병 입영 판정을 받았지만, 이후 2001년 11월 허리디스크로 병역이 면제됐다.

노무현 정부 시절 총리를 지낸 4명의 인사 중 군 면제자는 이해찬·고건 전 총리 2명이다. 이해찬 총리는 민주화운동을 하다 복역해 군대에 가지 않았다. 고 전 총리는 58년 징병검사에서 갑종 판정을 받았지만 5·16 쿠데타로 소집영장이 나오지 않아 군대에 가지 않았다. 그의 차남은 84년 징병검사에서 1급 현역 판정을 받았지만 87년 5월에는 질병을 이유로 면제받았다.

이명박 정부 때는 총리를 지낸 3명 중 2명이 군 면제를 받았다. 낙마한 총리 후보자와 아들까지 포함하면 현역 입영대상 13명 중 6명이 군 미필자다. 정운찬 전 총리는 66년 징병검사에서 현역 판정을 받았지만 77년 고령을 이유로 면제받았다. 김황식 총리는 시력이 좋지 않아 면제됐다. 두 총리의 아들은 모두 육군 병장으로 복무를 마쳤다.

한승수 전 총리는 61년 중위로 전역했다. 하지만 군 복무기간인 60년 3월 연세대를 졸업하고 전역 1년4개월 만에 서울대 대학원도 졸업해 논란이 일었다. 한 전 총리의 아들은 병역특례업체에서 4년6개월간 대체복무를 하면서 모두 14회, 244일 동안 해외에 머물렀다.

◇국회의원도 다를 바 없어=18대 국회의 경우 여성 의원 41명을 제외한 258명 중 47명이 병역면제 처분을 받아 ‘군 미필자 집합소’란 오명을 뒤집어썼다. 또 국회의원 아들 215명 중 22명이 면제됐고 7명은 공익요원으로 근무했다. 19대 국회에서도 여성을 제외한 253명의 병역 면제율은 18.7%(47명)에 달했다. 군미필 사유로 ‘수형’(19명)이 가장 많았다. 이어 질병 17명, 장기대기 5명, 고령 3명, 국졸 이하 2명, 탈북자 1명 등 순이었다. 19대 국회의원 아들들은 205명(징병검사 대기자 제외) 중 14명이 면제받았다. 16대(24.5%), 17대(24.2%)보다 개선됐지만 국민의 시각은 곱지 않다.

지난해 7월 기준 4급 이상 공직자 자제 7657명 중 367명이 군 면제, 916명이 보충역 판정을 받았다. 현역병 비율은 83.2%다. 지난해 국정감사 때는 4급 이상 고위공직자의 아들 33명이 병역을 기피하기 위해 국적을 포기한 사실도 드러났다. 정부기관 이사장이나 지자체장, 청와대 비서관도 포함됐다.

일반인의 병역 면제율은 40∼60년대 생이 30.5∼38.5%, 70년대 생 18.3%, 80년대 생 9.8%, 90년대 생 4.8% 수준이다. 과거에는 병적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군 면제 비율이 높았지만 최근 들어 현역병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출생연도를 기준으로 보면 고위공직자나 국회의원 면제율은 일반인과 큰 차이가 나지 않거나 오히려 낮다. 자제들도 일반인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고위공직자나 자제 중에는 병역 면제로 번 시간 동안 고시에 합격하거나 학위를 따 고액 연봉을 받고 출세한 사례가 빈번히 목격됐다. 현재는 건강을 되찾아 사회생활도 정상적으로 하고 있다. ‘병역 기피가 아닐 수 없다’는 의심이 드는 이유다.

병역 면제는 60년대까지 주로 입대시기를 늦춘 뒤 고령으로 면제받는 사례가 많았다고 한다. 70·80년대에는 시력·체중·디스크·정신질환 등 질병이 주요 사유였다. 이후에는 해외 장기체류나 영주권 취득 사례가 빈번히 등장했다. 이는 고위공직자와 그 자제들의 병역면제 패턴과도 비슷하다.

이재영 경남대 교수는 “엘리트층이 일종의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며 “청문회 때 여야가 병역 문제자를 철저히 배제하는 식의 전례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웅빈 정현수 기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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