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면서 가해자인 잔혹사 뒤의 운명적 고리… 정찬 창작집 ‘정결한 집’

2011년 11월, 사람들을 경악시킨 ‘고교생의 어머니 살해 사건’이 있었다. 1등을 바라며 체벌하는 어머니에게 조작된 성적표를 내밀던 학생은 학부모 방문의 날을 앞두고 진짜 성적이 들통 날까 어머니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뒤 시신이 있는 방의 문을 공업용 본드를 발라 봉인한다. 학생은 반년 넘게 어머니의 시신과 함께 산다. 그러다 별거하던 아버지의 방문으로 존속살해와 사체유기의 범행은 막을 내린다.

사건은 학생이 실형을 선고받고 종결됐지만 소설가 정찬(60·사진)은 창작집 ‘정결한 집’(문학과지성사)의 표제작에서 이 사건을 학생 입장에서 소설의 문법으로 재구성한다. 아들에 대한 애착을 모진 체벌로 보여준 어머니, 어머니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했던 아들. 둘은 누구도 독자적 존재가 아니다.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양립적 존재들이다. 그렇기에 사건의 직접적 원인으로 어머니가 든 매가 먼저였는지, 아들이 든 흉기가 먼저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둘은 서로에 대해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였던 것이다.

또 다른 수록작 ‘오래된 몽상’은 1937년 12월 발생한 일제의 난징 대학살의 이면을 다룬다. 이 사건으로 처참하게 죽은 이는 무려 30만명에 달하지만 역사는 또 다른 희생자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일본군에게 강간당한 여성들의 숫자를 적게는 2만명, 많게는 8만명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일본군의 피가 흐르는 아이를 낳았다고 증언한 여성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중국인 재야사학자 워이커씽이 이 사건을 집요하게 추적하게 된 건 자신의 혈관에 일본군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안 직후이다. 그는 소설 속 화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에게는 내가 희생자로 보이오? 가해자로 보이오? 오랫동안 나는 희생자라고 생각했소. 보이지도 않는 아버지를 증오하는 이유가 충분했소. 하지만 언젠가부터 내가 가해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거요.”(151쪽)

그의 어머니는 그를 출산하고 죽음을 택했으니 그는 희생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인 것이다. 그러니 대체 이 두 사건에서 보듯, 죽음은 과연 누가 꾸는 꿈이란 말인가. 신에게 물어본다면 대답할 수 있을까. 정찬의 소설은 이처럼 우리를 종교적 질문에 이르게 한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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