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의 ‘문화재 속으로’] (96) 경운궁이냐 덕수궁이냐

Է:2011-12-04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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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형의 ‘문화재 속으로’] (96) 경운궁이냐 덕수궁이냐

서울 도심 한가운데 위치하면서 돌담길 등 주변 환경이 좋아 시민들의 산책 코스로 각광받는 덕수궁(사적 제124호)의 역사는 41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593년 10월, 선조가 임진왜란으로 평안북도 의주로 피란했다가 한양으로 돌아왔지만 궁궐이 소실돼 머물 곳이 없자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개인 저택이었던 이곳을 임시행궁으로 사용했답니다.

덕수궁의 원래 이름은 경운궁이었습니다. 1608년 광해군이 이곳에서 즉위한 뒤 1611년 정릉동(지금의 정동) 행궁을 ‘경운궁(慶運宮)’이라 명명했지요. 1615년에는 병조판서 이항복이 궁장(宮薔·담장)을 두르고 궁궐 모양을 갖추었답니다. 1620년 인조가 반정으로 집권한 후 경운궁 침전(寢殿)에서 즉위하는 등 조선왕조의 대표적인 궁궐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1623년 선조의 침전(즉조당·석어당 추정)을 제외하고 경운궁의 나머지 가옥 등은 원래 주인에게 돌려줌으로써 쇠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로부터 270년이 흐른 1893년 10월, 고종이 선조 환도 후 5주갑(300년)을 맞아 세자(훗날 순종)와 함께 즉조당에서 배례(拜禮)를 하고, 4년 뒤에는 환구단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법궁(法宮)으로 격상하게 되지요.

그러다 1905년 중명전에서 한일협약(을사늑약)이 체결되고 이듬해 일본 통감부가 개설되면서 아픈 역사를 시작하게 됩니다. 1907년 아들 순종에게 황제 자리를 물려준 고종이 경운궁에 계속 거주하자 순종은 경운궁을 ‘덕수궁(德壽宮)’으로 개칭해 오늘에 이르렀답니다. ‘덕수(德壽)’는 살아 있으면서 퇴위한 상왕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았다고 합니다.

이 고궁을 두고 명칭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문화재청은 일부 역사학계에서 덕수궁의 본래 이름이 경운궁이라는 사실을 들어 옛 명칭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됨에 따라 지난 2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청회를 가졌습니다. 명칭 변경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경운궁이 300여년간 사용한 역사적인 이름이지만, 덕수궁은 조선총독부 주도로 개칭된 일제의 잔재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명칭 변경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덕수궁의 지난 100여년도 엄연히 역사이며, 덕수궁 개칭이 일제의 잔재라는 근거도 없다고 반박합니다. 또 덕수궁이라는 이름이 이미 대중적으로 정착된 상태이므로 이를 바꾸면 사회·경제적 비용이 커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아 명칭 변경 움직임은 상당한 논란을 부를 것으로 보입니다.

명칭 변경 반대론자인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덕수궁은 조선왕조실록 원문에 175차례 기록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첫 기록은 정종 때(1399년 6월 1일)의 ‘태상왕의 궁을 세워 덕수궁이라 하고…’랍니다. 덕수궁 명칭이 1907년에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오랜 역사를 지녔다는 얘기죠. 경운궁과 덕수궁, 여러분들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이광형 문화생활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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