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득이’ 김윤석 “거참, 진짜 오랜만에 착한역 맡았네”
노름판의 냉혹한 승부사 아귀(‘타짜’), 연쇄살인자를 뒤쫓는 전직 형사 엄중호(‘추격자’), 돈이라면 사람 몇 명 죽이는 일에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옌볜의 잔혹한 살인청부업자 면정학(‘황해’)…. ‘배우 김윤석’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그는 출연하는 영화마다 야생마처럼 강렬한 캐릭터로 팬들의 이목을 끌었다. 오랜 극단 생활을 통해 체득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어느새 충무로의 대표적인 연기파 배우로 자리를 굳힌 김윤석(43).
그가 이번에는 사고뭉치 제자에게 희망을 선사하는 선생님으로 변신했다. 오는 20일 개봉하는 ‘완득이’(감독 이한)에서다.
2008년 제1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고, 지금까지 70만권이 팔린 김려령 작가의 베스트셀러 소설이 원작인 영화다. 여기서 그는 가난하고, 공부는 뒷전이고, 걸핏하면 주먹질하는 고교생 완득(유아인)의 담임교사이자 멘토인 동주 역을 맡아 특유의 존재감을 과시한다. 겉으로는 거칠고 삐딱해 보이면서도 속정이 깊은 교사. 실로 오랜만에 맡아보는 착한 역이다.
지난 4일 서울 태평로의 한 호텔에서 김윤석을 만났다. 그는 전날 촬영 때문에 피곤한 듯 얼굴이 부스스해 보였지만 말투에는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동주 역은 이전에 연기했던 캐릭터들과는 좀 다른 이미지인 것 같다.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동주는 동네 형 같고, 이웃사촌 같기도 한 선생님이다. 시나리오와 원작 소설을 다 읽어 봤는데 반에서 공부를 잘 못하는 소수나 다문화 가정 애들을 바라보고, 그들에게 다가가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동정의 눈길이 아니라 평등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들과 생각을 공유하고자 하는 모습에 끌렸다.”
-욕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인간미가 있는 인물인 동주 역을 잘 소화했다고 생각하나.
“제 입으로 말하기는 쑥스럽지만 시사회를 본 관객들의 반응이 좋았던 것 같다. 관객들이 우리가 생각했던 영화의 흐름을 잘 따라오고 있다는 걸 보고 기분이 좋았다. 이 영화는 작은 동네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지만 많은 것들을 이야기한다. 다문화에 대한 얘기만 아니라 상대방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이 밑에서 위로, 위에서 밑으로가 아니라 평등할 때 서로의 생각을 가장 잘 공유할 수 있고, 관계가 더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걸 이 영화는 얘기하고 있다.”
-영화와 원작 소설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
“영화는 원작에 매우 충실한 편이다. 다만 영화에서 동주의 연인으로 나오는 무협소설 작가 호정은 원작에는 없다. 감독, 시나리오 작가 등과 함께 촬영에 들어가기 전 각색과정을 거쳤는데 호정이라는 캐릭터는 그때 탄생했다. 우리는 김려령 작가가 바로 호정이라고 생각했다. 김 작가는 하고 싶은 얘기를 동주 선생을 빌어 한 거 아닌가.”
-이 영화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완득이’에는 악인이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 등장인물 대부분이 사랑스럽고 우리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다. (일반적인 영화기법과는 달리) 인물들의 갈등구조를 극대화시키지 않고 오히려 눌러버린 영화다. 캐릭터와 캐릭터 간의 살아 있는 느낌으로만 이끌어간, 그런 점에서 무모하고도 용감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관객들이 무얼 얻어가길 원하나.
“우리는 타인에 대한 선입견을 많이 갖고 있고, 한편으로는 무관심하다. 남이 나와 다를 수 있다는 걸 알고 인정하면 그와의 관계가 승화되고 발전할 수 있다. 살면서 그걸 놓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는 또 ‘완득이’가 한국 땅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외국인들을 좀 더 이해하려고 하고, 교사와 학생의 관계에 대해서도 조금이나마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유아인(25)과는 처음 호흡을 맞췄는데, 어떤 인상을 받았나.
“부럽더라. 그 젊음이 부럽기도 했지만 젊음을 거리낌 없이 표현할 수 있는 여건이 더 부러웠다. 패션 감각도, 아줌마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도 참 부러웠다.”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는 배우가 있나.
“모두가 라이벌이다. 유아인도 라이벌이다(웃음). 카메라 앞에서는 선후배가 따로 없다.”
-앞으로 계획은.
“‘도둑들’ 촬영이 11월 말이나 12월 초까지 예정돼 있다. 그 다음에는 쉴 생각이다. 다음 영화는 결정된 게 없다.”
‘도둑들’은 최동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범죄 액션물이다. 중국 마카오를 오가며 김혜수 이정재 전지현 등과 호흡을 맞춘 이 영화는 내년 여름 개봉할 예정이다.
-드라마에도 출연할 생각이 있나.
“출연 제의가 간혹 오기도 하지만 드라마는 영화에 비해 시간 제약을 많이 받기 때문에 그다지 끌리지 않는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정성스럽게 찍을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영화가 재미있다.”
마지막으로 ‘완득이’는 어떤 영화인지 한마디로 소개해 달라고 하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누구와 함께 오든, 언제 와서 보든 올가을을 행복하고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데 일조할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일반 시사회를 하면 할수록 반응이 좋으니 자신 있게 권하게 된다.”
그의 말처럼 ‘완득이’는 보고 나면 마음이 밝아지고 따뜻해지는, ‘행복 바이러스’를 간직한 영화다. 배고픈 극단 시절을 거친 중년의 연기파 배우 김윤석과 톡톡 튀는 신세대 스타 유아인이 18년의 나이 차가 무색하게 멋진 호흡을 보여줬다. 가난하고, 장애가 있고, 가슴에 상처가 있는 달동네 사람들이지만 서로 어깨를 기대며 희망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게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등이 굽은 몸으로 밤무대에서 춤을 춰가며 완득이를 홀로 키워온 아버지(박수영), 17년 만에 갑자기 완득이 앞에 나타난 필리핀 출신 엄마(이자스민), 완득이와 동주에게 걸핏하면 시비를 걸어대는 고약한 옆집 아저씨(김상호), 노총각 동주의 마음을 차지한 옆집 무협소설 작가(박효주) 등 조연들의 연기도 빛난다. 12세 이상 관람가.
라동철 선임기자 rdch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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