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식당은 주인이 왕이다… KBS 2FM ‘심야식당’ 윤성현 PD

Է:2011-06-30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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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당은 주인이 왕이다… KBS 2FM ‘심야식당’ 윤성현 PD

“메뉴판은 없다. 마음대로 주문하면 된다. 만들 수 있는 건 만들어주고 못 만드는 건 안 주는 게 나의 영업방침이다. 영업시간은 새벽 2시부터 3시까지 딱 한 시간. 간판은 ‘심야식당’. 손님이 오느냐고? 그게 꽤 온단 말이지.”

손님 알기를 우습게 아는 주인장, KBS 라디오 윤성현(34) PD는 자기 ‘식당’을 이렇게 소개한다. 손님이 뭘 주문하든 ‘만들 수 있는 것만 만들어주는’ 식당주인과 그래도 찾아오는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일본만화 ‘심야식당’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KBS 2FM 프로그램 ‘심야식당’을 만든 지 2년이 넘었다. 식당 주인이 직접 요리하듯, 직함은 분명 PD인데 DJ도 겸하는 그의 방송 멘트들은 대단히 불친절하다.

청취자 A: 저 혼자 좋아했던 사람이 있는데, 이번에 다른 여자랑 결혼한대요.

윤PD: 당연하죠. 혼자 좋아했으니까요.

청취자 B: 비가 오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요… 어쩌구 저쩌구… 신청곡은 ‘○○○’예요.

윤PD: 그런 사연이 있으시군요. 신청하신 곡은 안 틀어드리겠습니다(뭘 신청하든 틀어줄 수 있는 것만 트는 게 콘셉트니까).

이런 까칠함에 카타르시스를 느껴 단골손님이 된 청취자들이 새벽 2∼3시, 라디오에선 치명적인 시간대에 그를 찾아온다. 팬 카페가 생겨서 회원이 2700명을 넘어섰고, 홈페이지에 매일 들어오는 신청곡을 A4 용지로 출력하면 수 십장이 되고, 심지어 스토킹도 당해봤다고 한다.

신청곡도 안 틀어주는데, 요즘은 멘트 하기도 귀찮은 듯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만 내리 틀어놓고 방송 끝내버리던데, 나 같으면 안 듣고 말 것 같은데, 하면서 서울 여의도 KBS 스튜디오로 그의 식당을 찾아간 것은 28일 저녁 7시쯤이다.

“톡톡톡톡(파 써는 소리). 심야식당에 오셨습니다. 드르르륵(문 열리는 소리).”

스튜디오에 들어서자 윤PD 목소리가 들렸다. 항상 이 멘트로 방송을 시작한다. 다음날 새벽 2시에 시작될 방송을 녹음하는 중이었다(라디오 심야 프로그램은 대부분 녹음방송이다). 말투처럼 그는 인상도 고약한 편이다. 팔뚝엔 작은 문신도 있고, 손님이 왔는데 이건 뭐, 본체만체다. 이 프로그램을 처음 시작할 때 그는 홈페이지에 이런 글을 올렸었다.

“슬리퍼 신고 언제라도 들를 수 있는 길모퉁이 심야식당처럼 만만하게 와서 무심하게 주문하세요. 듣고 싶은 음악, 하고 싶은 이야기, 까고 싶은 DJ… 해드릴 수 있는 건 다 해드리고, 못해드리는 건 못해드립니다. (요일별 방송 안내를 한참 하더니) 이 정도 했으면 다시는 프로그램 안내 따위는 안 해도 되겠군요. 1년치 친절을 한꺼번에 베풀었더니 급 피곤하네요. 그럼, 잘 챙겨 드시고요.”

녹음 중간에 말 붙일 기회가 생겼다. 나는 목이 말랐다. “저 마실 것 좀….” 그가 내민 건 빈 종이컵이다. 알아서 물 따라 먹으란 거네. 그는 ‘객원DJ 코너’를 제작하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외부에서 DJ를 초청해 토요일 밤 방송 분을 맡겨 버린다. 마이크 볼륨을 높였다 낮췄다, 컴퓨터로 음원을 끌어다 서로 붙였다 뗐다 하면서 간간이 대화를 이어갔다.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은 MBC ‘무한도전’이며 이유는 그 프로그램이 소속감을 준다나 어쩐다나. 라디오 프로그램은 ‘배철수의 음악캠프’ 같은 몇몇 장수 프로그램을 즐겨 듣고, 닮고 싶은 사람은 딱히 없지만 유희열이나 윤상처럼 음악 잘 만드는 사람 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는 등.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는데 솔직히 귀엔 안 들어오고, 난 목이 마를 뿐이었다. 한참 지나서야 그는 밥을 못 먹었다며 같이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한다. ‘밤 9시가 넘었는데… 난 목이 마르다니까.’

방송국 앞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들어서며 그는 “지금 식사 돼요?” 하더니 이것저것 주문했다. 잠시 후 점원이 난감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가 주문한 음식의 재료가 떨어진 모양이다. 윤PD는 마뜩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런 데서 안된다니, 황당하네” 했다. 자기도 주문 받은 신청곡 잘 안 틀어주면서….

이날 방송 녹음 마지막에 그는 이런 멘트를 했다.

“심야식당 이제 문 닫을 시간입니다. 오늘 들으신 노래 제목과 아티스트 이름은 선곡표를 참조해주세요. 선곡표는 뭐, 그럴 때 쓰라고 있는 거니까. 제가 구구절절 말씀 드려봤자 기억에 남겠습니까.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내일 뵙죠. 오늘도 잘 챙겨 드세요.”



-원래 이래요?

“처음엔 두 곡 정도 듣고 사연 소개하고 상담 멘트 몇 번 했는데, 상담이랄 것도 없죠 뭐. 요즘은 오프닝하고 클로징 멘트만 해요. 다 해봐야 1분?”

-방송 참 쉽게 하시네요.

“심야식당 만드는 거 편하죠. 제가 어떻게 해도 되는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놨기 때문에.”

-오래 하실 생각이 없나 봐요?

“이 프로그램을 길 게 하는 건 의미 없는 것 같아요. 장수 DJ가 될 의욕이라든가 의지가 없거든요. 애정이 없는 거랑은 달라요. DJ이기 전에 연출자니까. 사람들이 좋아할 프로그램 만드는 게 먼저죠.”

-그럼 문 닫는 거예요?

“그건 모르죠. 하지만 새벽 2시의 판세가 바뀌었기 때문에. 우선 지상파 방송 3사만 놓고 봤을 때 이 시간대 DJ는 여성에서 남성으로 다 바뀌었고요. 그 바뀐 DJ의 특징이 저랑 겹치는 부분이 있어요. 신해철씨의 독설이라든가 영화평론가 이동진씨의 선곡이라든가(지난 봄 개편 때 이 시간대 경쟁프로그램 DJ들이 모두 교체됐다). 심야식당 청취율의 파급력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돼서 잘됐다가 아니라 이제 나는 다른 거 해야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저는 대한민국의 수많은 라디오 피디 중 한 사람일 뿐이에요. 아무리 제가 뭘 하려 해도 얼굴에 분칠하는 사람의 끼를 당해낼 순 없거든요. 외부 DJ를 섭외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까칠하게 방송하는 건 일부러 그러는 건가요.

“콘셉트이기도 하고… 방송하면서 그걸 극적으로 부각시킨 거죠. 늘 뻔한 얘기, 착한 멘트, ‘사연 들어보니 직접 뵙지 않고는 뭐라 말할 수 없지만 어쨌든 힘내세요, 다 잘 될 거예요’ 이런 말 지겹잖아요. 완전히 새로운 뭔가를 만들고 싶었어요.”

-방송에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는 절대 안 틀겠다고 말했었죠?

“난 그 노래 가사에 공감할 수 없어서 틀지 않겠다고 선언했는데, 실제 그 노래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일종의 제 캐릭터를 만든 거예요. ‘서른 즈음에’를 듣고도 공감 못하는 DJ란 캐릭터를 연출하려 한 거죠.”

-‘서른 즈음에’ 말고도 신청곡을 잘 안 틀던데.

“다른 프로그램에서 충분히 들을 수 있는 노래, 굳이 틀 이유가 없죠.”

한참 얘기를 나누는데 살짝 잘난 척을 한다.

“선곡만큼은 잘한다고 생각해요. 남들이 흉내는 낼 수 있겠죠. 제 선곡표 보고 가져다 쓰면. 하지만 그냥 흉내죠. 선곡 노하우요? 그건 영업비밀입니다.”

그간의 선곡을 유심히 들여다보니 일관성이 있다. 여심(女心)을 흔드는 노래. 윤PD는 여성 청취자만 염두에 두고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말했다. 라디오 청취자가 주로 여성인 데다(그는 국군방송조차 여성이 더 많이 듣는다고 주장했다), 심야시간에는 특히 더 그렇고, 감수성이 예민한 여성을 타깃으로 해야 음악프로그램의 성공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새벽 2시. 잠 못 들어 라디오 켜는 이들의 밤을 그는 ‘불친절’ 하나로 바꿔버렸다. 위로하는 목소리가 대세이던 심야 라디오의 풍경이 “뭐, 그런 일로 위로까지 받으려 하느냐”는 식의 까칠함으로 채워졌고, 사람들은 오히려 거기서 위로를 받는 듯하다.

KBS 노동조합이 파업할 때마다 ‘파업 장기화와 몰골들’이란 밴드에 가담해 드럼 치는 7년차 라디오 PD. 프로그램 2개를 맡고 있고 그 중 하나는 진행도 하는데, DJ 해봤자 생기는 건 인기뿐이라며 귀찮다고 말하는 이 남자, 사실 이날 무척 친절하려 애썼다. “비 맞으시면 안돼요”란 말도 해주면서.

이경선 기자 boky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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