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기의 溫 시네마-인 어 베러 월드] 휴머니즘 안에서 용서의 범위는…

주말 토요일 오전에 극장을 찾았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아이들 손을 잡고 있는 부모들로 가득했다. 그런데 나와 같은 상영관으로 들어간다. 옆이 블록버스터인데. 그리고 그들은 영화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서로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조용히 영화를 봤고 눈가는 촉촉했다.

놀이터에서 잘 놀던 내 아이가 갑자기 애들한테 얻어터진다. 직장에서는 상사가 나에게 온갖 스트레스를 쏟아낸다. 내 안에 뱀처럼 똬리를 튼 분노는 점점 쌓여가고 이를 뱉어내야만 하는 대상이 필요하다.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곳에서 일어나는 타자에 대한 나의 분노를 폭력으로 받아칠 것인가. 아니면 용서로 치유를 얻을 것인가. 나를 인도해줄 안내자 혹은 구원자는 어디에 있는가. 세상은 결코 만만치 않다.

2011년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동시에 석권한 영화 ‘인 어 베러 월드’는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덴마크 영화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말하는 세상은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와 이웃, 학교 혹은 직장이 있는 대한민국의 전혀 낯설지 않는 어느 곳과 등치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이래로 세상 어디든지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관계에 의하여 나타나는 분노와 시기, 배신 그리고 복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캐릭터 간의 복수와 용서라는 딜레마를 긴장감 있는 플롯으로 전개한다. 반면에 아프리카의 광활하고 거친 사막과 덴마크의 서정적인 저녁노을이 서로 대비되는 화면은 우리의 내면에 더 나은 세상은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앨리아스와 크리스티앙의 학교, 배신의 상처 때문에 서로 아파하는 안톤과 마리안느 부부, 폭력의 광기와 전쟁이 현실인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 이들 각자의 세상은 우리라는 세상으로 점점 확대된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지 않기 위해 크리스티앙은 자기보다 덩치가 훨씬 큰 아이를 무기로 확실하게 린치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아이들조차 자기를 괴롭힐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수단의 난민 캠프에서 환자를 돌보는 안톤은 늘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다. 언제나처럼 트럭 뒤를 쫓아오는 아이들에게 미소를 던지지만 끔찍한 폭력에 지친 안톤의 얼굴에는 치유되지 않는 정서적 내상이 드리운다. 이렇게 각자의 다른 세상은 친구와 가족, 가정과 사회라는 복잡한 상호작용으로 얽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마을 방앗간 꼭대기에 올라 분노에 찬 시선으로 세상을 응시하던 크리스티앙이 최후의 복수를 감행하려 할 때 안톤은 크리스티앙에게 말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목도할 때 그와 나 사이를 가로막던 삶과 죽음의 장막은 잠시 걷힌단다. 그래서 죽음과 정확히 대면하고 혼란스러워지지. 그러나 이내 시간이 지나면 장막은 다시 드리워지고 우리는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거란다.”

덴마크의 여성 감독 수전 비에르는 1999년 그녀의 데뷔작 ‘더 온 엔드 온리’로 500만 인구의 덴마크에서 1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유럽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자리매김한다. ‘인 어 베러 월드’에서 그녀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차분하고 잔잔하게 캐릭터에 동화시킨다. 안톤의 막내아들이 놀이터에서 또래의 아이와 싸우자 이를 말리려다 오히려 아이의 아빠에게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따귀를 맞고도 저항하지 않는 장면에서 관객의 감정은 조용하게 증폭된다.

이런 안톤의 딜레마는 자신이 돌봐야만 하는 환자이자 전쟁의 광기와 폭력의 근원인 빅맨을 겪으며 의사로서의 신념에서 분노로 폭발한다. 빅맨의 피해자들로 가득한 난민에게 그를 던져버릴 때 관객은 안톤에게 완전히 동화되어 안타까워한다. ‘인 어 베러 월드’의 세상 안에는 인류의 영원한 숙제인 용서와 치유라는 커다란 주제를 함의하고 있다. 다르지만 같은 세상에서 치열한 삶의 성장 통을 보듬는 사랑의 힘을 관객은 숨죽여 응시하고 치유의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우리는 조용히 되묻는다. 휴머니즘 안에서 용서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사람을 향한 연민의 랩소디 같은 영화이다.

조현기(서울기독교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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