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애옥] 첫사랑 전상서
친절한 공연을 보고 왔습니다. UBC의 ‘라 바야데르’는 블록버스터 발레와 드라마 발레의 정수를 만끽하게 해준 작품이었습니다. 단장은 공연 직전 작품의 스토리텔링과 시대적 배경설명은 물론 직접 동작을 해보이며 관객의 감상 포인트를 도와주었습니다. 공연 중에는 실시간 자막대본이 흘러 아마추어도 음악과 춤의 아름다운 조화에 집중하는 환상적 체험을 하였지요.
젊은 연인들의 사랑과 질투와 욕망과 배신, 그리고 판타지에 어느 새 동일시되어 청춘 시절로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흠칫하였습니다. 노래 가사처럼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보내고 ‘시월의 마지막 밤’을 생각하게 하는 시점에서 첫사랑 당신을 내 마음 안에서 불러봅니다.
평생 두 번 보고 뽀뽀 한번 못해 보았지만 스쳐가는 바람결처럼 언뜻언뜻 내 의식 속에서 스멀거리던 이름이었습니다. 몇 해 전 시월의 마지막 날에 그대 이름을 인터넷 검색어에 찍어보고 유비쿼터스 시대임을 실감하였지요. 캐나다에서 이민자로 살고 있는 중년의 남자 사진이 낯설고 아득하였습니다.
순전한 소녀시절, 안경 쓴 까까머리 키다리 남학생의 편지를 받는 즐거움으로 단풍이 들고 눈이 내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함박눈이 내렸었습니다… 오가던 우편물은 영화 ‘노트북’의 한 장면처럼 자식 사랑이 지극한 엄마에 의해서 미리 압수되어 우리의 인연은 몇 개월 만에 끝나버렸지만 분별없는 감성은 뇌수에 흘렀습니다.
프랑스어로 인도의 무희라는 뜻의 ‘라 바야데르’에서 니키아는 춤을 추던 중 계략에 의해 독사에 물리고 마는데 해독제를 마시고 새 삶을 살 수 있었음에도 사랑의 감정을 지키고 싶어 달콤한 제안을 거절하고 죽음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저 또한 해독제를 마시지 않은 채 첫사랑의 추억을 예쁜 단풍잎 한 장으로 만들어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단풍잎이 바스라질까봐 그대와의 세번째 만남은 영원히 거부하겠습니다.
‘인연’이라는 수필의 한 대목이 떠올려집니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금아(琴兒) 피천득 선생은 수십 년이 흐른 후 기자가 찾아준 그 아사코와의 재회를 거부하셨습니다. 폭설이 내리고 눈사태가 나야 인연은 아니지 않을까요? 열일곱 미숙하고 풋풋한 감정 그것만 간직하겠습니다. 여리고 가는 추억의 끈을 애써 놓지는 않겠습니다.
데칼코마니처럼 마주 보는 코가 닿아야 인연의 완성은 아니라고 봅니다. 당신이 아니라 첫사랑을 사랑하겠습니다. 찰나의 순간처럼 스쳤던 감정도 오늘의 내가 있게 한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니키아는 연인 솔로르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꿈속에서 이룹니다. 저는 꿈꾸지 않겠습니다. 지난한 삶 가운데 영롱한 이슬방울처럼 눈이 시린 기억을 간직하며 사는 일도 축복이 아니겠습니까? 고통이 곧 불행은 아니니까요. 삶은 그냥 살면 되고 길은 그냥 걸으면 길이 된다 하였습니다. 철 지난 바닷가라도 걷고 싶어집니다.
김애옥 동아방송예술대교수
GoodNews paper Ϻ(www.kmib.co.kr), , , AIн ̿
Ŭ! ̳?
Ϻ IJ о
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