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 원사-상사실 통로서 발견… 명찰로 확인
3일 오후 5시47분 천안함 함미가 침몰된 백령도 남서쪽으로 약 2.7㎞ 해상. 해난구조대(SSU) 소속 송하봉(32) 석규주(34) 중사는 함미 위치를 표시한 주홍빛 부이 주변으로 잠수를 시작했다. 두 사람의 임무는 함수와 함미로 두 동강 난 천안함의 절단부를 조사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부이에서 바닷속 45m 깊이 선체까지 연결된 인도색(인도용 밧줄)을 따라 신속히 아래로 내려갔다. 곧 함미 주갑판에 도달했다. 바닷속은 유속이 빠르고 흙탕물이 쳐서 30㎝ 앞을 분간하기조차 힘들었다. 둘은 손으로 주변을 더듬으며 천천히 원·상사실 방향으로 이동했다. 함미는 기울어져 있지 않고 똑바로 가라앉은 상태였다.
갑판 통로를 따라 절단부에 다다랐을 즈음 손에 둥글고 굵직한 물체가 잡혔다. ‘소방 호스인가’라는 생각이 둘의 머릿속을 스쳤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다리였다. 천안함 침몰 9일째 만에 실종된 승조원 46명 가운데 첫 시신이 발견된 순간이었다.
발견 당시 그는 전투복 상의를 입었으며, 바지는 입지 않고 속옷 차림이었다. 그의 시신은 절단면 부근인 원·상사실 통로에 끼어 있었기 때문에 사고 해역의 강한 조류에 휩쓸리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속옷 차림인 점으로 미뤄 천안함 사고 당시 그는 취침 준비를 하거나 쉬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원·상사 식당 바로 아래층은 원·상사 침실이다.
송 중사와 석 중사는 “시신이 발견된 원·상사실 윗부분 알루미늄 상부 구조물은 진흙과 모래투성이였다”며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진흙 등을 손으로 치워가며 작업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준비해 간 태극기로 시신을 감싼 뒤 시신이 손상되지 않도록 감압 절차를 거쳐 조심스럽게 물 위로 올라왔다. 그의 시신은 오후 6시7분쯤 물 위로 나와 대기하던 고무보트에 실렸다. ‘남기훈’. SSU 요원들이 확인한 전투복 상의 명찰에는 그의 이름 석자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다행히 시신에는 큰 상처가 없었고 훼손되지 않았다. 남 상사의 시신은 근처에 대기하던 취재진이 탄 선박을 뒤로 한 채 고무보트에 실려 황급히 광양함으로 옮겨졌다. 광양함 승조원과 SSU 요원들은 갑판에서 고인의 명복을 빌며 묵념했다.
“SSU 요원들은 수중에서 시신을 발견할 경우 그 자리에서 거수경례를 해 예를 표합니다. 하지만 남 상사의 시신을 발견할 당시는 상황이 긴박하고 앞이 보이지 않아 미처 예를 올리지 못했습니다.” 석 중사는 시신 수습 당시의 긴박했던 순간을 이같이 전했다.
남 상사의 시신은 광양함에서 독도함으로 이송됐고, 4일 오전 8시쯤 헬기에 실려 9시30분쯤 평택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 안치됐다. 유족 18명은 슬픔을 주체하지 못한 채 통곡하며 남 상사의 시신을 맞았다.
시신 안치는 시종 무거운 분위기 속에 유족과 지인, 군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30분간 치러졌다. 유족들은 손수건을 꺼내 연신 눈물을 닦았고 두 손을 모은 채 남 상사의 영면을 기도했다.
백령도·평택=엄기영 조국현 유성열 기자 eo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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