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가 주최한 ‘미전도종족(UPG)과 미접촉종족선교(UUPG)’ 포럼이 열렸다. 미전도종족 선교전략은 한국교회의 선교가 활성화하는 시기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단기선교와 선교사 파송이 활발해지면서 이 전략을 통해 다양한 선교가 일어났다.
이런 흐름 속에서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말이 선교계의 중요한 화두로 등장했다. 이번 포럼에서는 그동안 세계 선교계를 비롯해 한국 선교계를 이끌었던 미전도종족 선교 방식이 점차 전략적으로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 대한 문제 제기가 나왔다. 하지만 이에 대한 성경적 근거와 전략을 제시하며 여전히 교회가 초점을 둬야 하는 사역 방향임을 명확히 했다.
1962년 토머스 쿤은 ‘과학 혁명의 구조’를 통해 패러다임을 전환한다는 개념을 소개했다. 이것은 과학계뿐 아니라 사회학과 경영학을 넘어 신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쿤이 말한 전환의 본질이 사고방식의 근본적 변화라면 신앙의 세계에서 그것은 ‘진리의 변형’이 아니라 ‘진리 이해의 확장’으로 나타나야 한다. 바로 여기서 기독교의 독특함이 드러난다. 기독교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복음을 다양한 문화와 언어 속에서 새롭게 해석해 온 종교다.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선교계에서도 이 개념이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포럼에 참여하며 필자가 고민한 것은 ‘현재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의 근본적 변화는 무엇인가’였다. 자연과학은 증명에 의해서 논리와 이론이 전환돼야 하는 성격을 띤다면 인문학의 패러다임 전환은 사고 틀의 확장이라고 볼 수 있다.
기독교는 여타의 종교와 달리 십자가 복음이 다양한 나라의 문화와 언어로 표현되며 시대의 변화에도 충분히 해석되는 진리이다. 변화하는 세상, 변함없는 진리인 것이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는 방식은 틀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 과거에 성공했던 방식이라 할지라도 현재에 그것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선교의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말에서 볼 때 변화를 위한 변화로 본질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미전도종족 선교를 둘러싼 논의를 들 수 있다. 이것은 한때의 전략으로 치부돼 현재의 총체적 선교, 선교적 교회 등으로 발전되고 전환돼야 하는 개념이 아니다.
그동안 우리가 특별한 전략으로 인식했던 ‘미전도 종족’ 선교는 성경을 통해 교회에 주어진 사명의 방향이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지속해서 발전한 다양한 선교전략은 방향성의 하나로 해석될 수 있다. 물론 구체적인 행동양식 전략도 많다.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교회의 사명의 방향은 변함없지만 나타나는 형태는 다양하다. 1990년대에는 선교적 동참이 제한적이었지만 이후 40여년 가까이 교회의 참여가 폭넓게 확산하면서 미전도종족 선교는 한 방향이 아니라 여러 형태로 확장됐다. 이런 상황은 미전도종족 선교에 대한 전략적 후퇴가 아닌 선교 공동체 사명이 드러나는 형태의 다각화라고 봐야 한다. 결국, 패러다임 전환이란 전략의 경중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교가 훨씬 더 넓고 깊고 다양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인식의 확장이어야 한다.
기독교인의 생각과 사고의 전환은 방향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그 방향의 넓고 깊은 영역들이 있음을 인정하고 자신의 역할을 찾아 순종하는 것이다. 죄의 구조 아래서 고통받는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해방, 자유의 소식을 전해야 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이 여전히 고통받고 있고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머무는 곳으로 다가가야 하는 교회의 모습은 다양하게 요구된다.
포럼을 통해 패러다임 전환에 대한 질문에서 전환의 의미가 우리가 생각한 폭의 유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시대에 허락하신 다양한 기회들, 그것에 순종하기 위해 특정한 사람들이 아닌 온 교회가 동참해야 한다는 인식의 확장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복음의 본질은 변하지 않지만 세상과 문화의 옷을 입는 방식은 시대마다 달라질 수 있다. 선교의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것은 복음의 깊이를 회복하고 그 지평을 확장하는 것이다. 지금은 새로운 전략이 필요한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고 더 깊이 헌신하는 성숙과 확장의 전환이 필요한 시대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전략이다.
이대행 엠브릿지 대표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