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홀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함께 살아가는 법도 배워야 합니다. 홀로 사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저 혼자 있으면 됩니다. 그러나 함께 산다는 것은 다릅니다. 그것은 배워야 하고 연습해야 합니다.
심리학자들은 영유아기에 형성되는 애착이 평생의 관계 방식을 결정한다고 말합니다. 부모와의 안정된 애착은 건강한 인간관계를 가능하게 하지만 결핍된 애착은 평생 외로움의 상처를 남깁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그 상처가 집단적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영국의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는 저서 ‘고립의 시대’에서 “현대인은 기술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정서적으로는 고립되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스마트폰과 인공지능이 인간의 대화 자리를 대신하고, 반려동물이 사람을 대신하는 시대. 우리는 연결되어 있으나 실은 더욱 외로워졌습니다. 허츠는 이렇게 말합니다. “외로운 세기의 해독제는 결국 우리가 서로를 위해 옆에 있어 주는 것뿐이다.”
요즘 한창 진행 중인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4’에 등장한 한 노래 ‘일종의 고백’의 가사처럼, “누구라도 상관없으니 나를 좀 안아줬으면 좋겠다”는 절규가 이 시대의 공통 언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갈망은 결국 사람을 넘어 우리 존재의 근원으로 향합니다.
성경은 인간의 외로움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제사장 제도’로 보여줍니다. 출애굽기 28~29장은 하나님께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세우는 장면을 기록합니다. 제사장은 단순한 종교인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다리이자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중보자입니다.
대제사장의 옷은 화려했습니다. 청색 자색 홍색의 실과 금실이 어우러진 에봇, 열두 지파의 이름이 새겨진 흉패, 금방울과 석류가 달린 겉옷, “여호와께 성결”이라 새겨진 관. 그러나 그 화려함은 권위의 상징이 아니라 거룩의 부담을 의미했습니다. 대제사장은 백성의 이름을 가슴에 품고 하나님의 거룩 앞에 서야 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을 품은 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이 거룩한 직분은 종종 타락했습니다. 중세 교회의 성직매매(Simony)와 족벌주의(Nepotism)는 대표적 예입니다. 11세기 유럽에서는 주교직이 돈으로 거래되었고, 15세기 교황 식스투스 4세는 조카 여섯 명을 추기경으로 임명했습니다. 권력과 혈연이 신앙을 대신하면서 교회는 세속화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다른 형태로 같은 유혹 앞에 서 있습니다. 명예와 자리를 좇으며 ‘거룩한 소명’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장은 제도를 넘어 ‘두 마음’을 품은 사람입니다. 한쪽에는 하나님의 마음, 다른 한쪽에는 백성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거룩과 사람의 눈물이 함께 뛰는 그 마음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두 마음을 완벽하게 품으신 분입니다. 아론은 죄를 덮기 위해 피를 드렸지만 예수님은 죄를 없애기 위해 피를 흘리셨습니다. 아론은 백성을 위해 옷을 입었지만 예수님은 백성을 위해 옷을 벗으셨습니다. 아론은 휘장 앞에서 멈췄지만 예수님은 그 휘장을 찢고 우리를 하나님의 품으로 이끄셨습니다. 그분은 지금도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대제사장이십니다.
홀로 살아야 하지만 결코 혼자가 아닌 삶. 그것은 예수님과의 깊은 영적 애착에서 시작됩니다. 그분을 사랑할 때 우리는 다시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외로운 세기 속에서 신앙인은 ‘함께 있음의 예언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세상 사이의 다리, 외로운 이웃의 곁에 서는 제사장, 그리스도의 거룩을 입은 사람. 그것이 오늘 우리가 부름받은 자리입니다. 홀로 그러나 함께. 하나님과 이웃 사이를 잇는 사람으로 사는 것, 그것이 진정한 예배자의 길입니다.
(안산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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