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어쩔 수가 없었다는 감각

Է:2025-11-04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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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 영상센터장


조만간 내전이라도 벌어질 듯 위태로운 미국 내 정치적 대치의 한가운데에 뜬금없이 1500년 전 신라 금관이 휘말려 들어갔다. K열풍의 달갑지 않은 부산물일까.

“대통령이 한국에서 받은 금관을 쓰고 백악관 발코니에서 시위대를 향해 왕처럼 손을 흔들어주면 좋겠어. 기쁨의 눈물을 또르르 흘리면서.” 600만명 구독자를 가진 미국 우파 유튜버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건넨 금관 사진을 띄워놓고 한참을 낄낄댔다. 댓글은 온통 축제였다. “한국 정부도 미국 민주당을 비웃는구나” “리버럴들 멘붕” “민주당원 비명으로 911 먹통” “민주당 발작 개시”. 동맹국 한국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반대하는 노킹스(No Kings) 시위를 금관 선물로 대놓고 조롱했다고 해석한 거다.

기쁨으로 반짝이는 우파들의 표정을 보면서 지난주 미 토크쇼에 흘러넘친 한국을 향한 비판과 풍자, 반(反)트럼프 진영이 금관 선물에 느낀 불쾌감의 강도를 이해하게 됐다. “한국에 실망했다”는 댓글은 그나마 점잖은 수준. 소셜미디어에는 “한국 대통령은 부끄러운 줄 알라” “나르시시스트에게 금관을 준 한국의 수준” 같은 열띤 비난이 넘쳤다.

한국의 진보 정부가 미 극우로부터 박수를 받고, 민주주의를 외치는 진보 진영으로부터 원망을 듣는 구도라니. 당황스러운 전개인 건 맞는다. 그러나 우리라고 할 말이 없겠는가. 트럼프 대통령은 무기력한 미국의 진보 정치가 만든 불행한 사건이고, 그들의 진보 의제가 실패했다는 살아 있는 증거다. 대체 누가 그를 왕으로 만들었나. 금관이 아니라 미국 민주주의의 실패였다. 그 실패에 세게 맞은 건 미국 밖 우리들이고. 그러니 뺨 맞고 애써 참은 한국을 비난할 일이 아니다.

그 와중에 기사에 달린 한국인의 댓글은 흥미로웠다. “우리부터 살고 보자” “일단 살아야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 “경복궁은 못 지어주겠나” “밥그릇 챙기기도 바쁘다” “미안하지만 우리도 어쩔 수가 없었다”…. 댓글에는 한국인 다수가 공유한 강력한 집단의식이 흘러넘쳤다. 바로 생존 본능이다. 그러니까 미국이 오독한 금관 선물의 진짜 이유, 한국인 모두 금관을 보자마자 직감적으로 이해한 그것은 우리의 생존 본능이었다. “어쩔 수가 없었다”로 요약되는 한국인의 생존 본능 안에는 많은 것이 담긴 듯하다. 물러서면 죽는다는 위기의식, 돌파해내겠다는 의지와 열정, 인내와 희생정신까지.

인공지능(AI) 3대 강국을 꿈꾸는 경제대국 대한민국이 여전히 생존 모드를 끄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가 거론된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살아남은 5000년 역사와 식민지배·전쟁·분단·독재를 겪어내고 다시 일어난 지난 100년, 두 번의 대통령 탄핵과 최근의 내란 사태까지 한반도의 과거 전체가 우리의 끝없는 생존 모드에 영향을 준 게 아닐까. 짐작만 할 뿐이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금관보다 더한 것을 내주고라도 기어이 우리 자신으로 살아남겠다는 이 압도적 감각은 한국인들이 다음 세대에 원형 그대로 물려주는 거의 유일한 유산인지도 모르겠다.

밖에서 한국인의 지독한 생존 욕구를 이해할 것 같지는 않다. 세계가 한국에 주목한 게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니니까. 그러고 보면 금관 해프닝은 안과 밖 시차가 만든 오해일 수도 있겠다. 밖에서 보는 우리와 안에서 생각하는 우리, 남들이 생각하는 한국의 위상과 한국인이 짐작하는 한국 사이에 존재하는 격차가 만든 오해 말이다.

개인적으로 다음 세대를 위해 이런 피 말리는 생존 모드는 그만 껐으면 좋겠다.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인구 14억명의 중국, 1억2000만명의 일본과도 매일 100m 달리기하듯 경쟁하는 나라가 한국 아닌가.

이영미 영상센터장 ym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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