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두 달만에 경주에서 다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은 경제·외교안보 전반에 새로운 차원의 동맹을 구축하는 성과를 도출해 냈다. 미국의 3500억 달러 ‘현금 선불’ 요구로 난항이 예상됐지만, 연 200억 달러 상한의 분납 구조로 합의한 것은 그동안 막혀 있던 통상 불확실성을 해소한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관세 합의를 넘어 안보까지 아우르는 ‘전략적 패키지형 합의’라는 점에서 그 성과가 빛을 발한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핵잠함) 건조 승인 의사를 밝힌 것은 한·미 안보 동맹이 한 단계 격상될 것임을 예고한다.
눈에 띄는 건 모처럼 야당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점이다. 국민의힘은 “통상 불확실성이 해소돼 다행”이라고 논평했고,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도 “최선에 가까운 결과”라고 평가했다. 이번 성과가 정치권이 국익을 위해 초당적으로 협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다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격언처럼 향후 합의의 내실을 채우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2000억 달러 현금투자의 운용 구조와 거버넌스가 여전히 불투명하다. 투자위원회 의장직이 미국 상무장관에게 돌아간 만큼 명목상 ‘공동 투자’가 자칫 ‘미국 주도 투자’로 변질되지 않도록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 또한 반도체 관세율과 농산물 시장 개방 등 주요 조항의 해석이 양국 간 엇갈리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특히 민감한 농산물에 대해 우리는 추가 개방하지 않기로 했다고 강조했지만 미국은 “한국이 시장을 100% 개방하기로 했다”고 반박해 향후 진통이 예상된다. 아울러 연 200억 달러 상한 설정이 외환시장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장치지만, 실제 집행 과정에서 원·달러 환율의 상향 고착화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도 부담이다.
문구 하나, 조항 하나의 차이가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세부 협정문 공개와 검증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한·미 동맹 업그레이드는 선언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합의의 디테일을 점검하고 국내 제도와 산업 기반을 단단히 다져야 이번 성과가 실질적 국익으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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