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한 빌딩 1층에 자리한 교회 공간 한쪽 ‘He is a waymaker(그분은 길을 여시는 분)’ ‘miracle worker(기적을 행하시는 분)’ ‘promise keeper(약속을 지키시는 분)’ 등의 문구가 검은색 레터링으로 새겨진 유리창이 눈에 띈다. 유리창 넘어 진열된 형형색색의 패션 소품과 다양한 굿즈에선 한눈에 트렌디함이 느껴졌다. 고급스러운 나무 느낌과 푸른색으로 인테리어 된 20㎡(6평) 남짓의 이 매장은 크리스천 굿즈 브랜드 웨이메이커(waymaker) 플래그십 스토어다.
최근 이곳에서 만난 김지원(47) 대표는 “세상의 트렌드보다 하늘나라 왕, 왕 중의 왕이신 하나님의 문화를 전하는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패션디자인과 마케팅을 전공하고 디자인·기획·MD 분야에서 약 15년간 활동한 그는 모자 티셔츠 가방 지갑 등 100여종의 아이템으로 젊은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그는 “패션은 일상적이면서도 영향력 있게 복음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도구”라며 “대놓고 복음적 메시지를 전하면서 하늘의 왕 되신 하나님 문화를 힙하게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장로회신학대 팝업 행사에 참여한 일을 계기로 올해 장신대 북카페 안에 2호점을 열었다. 신학생들 반응이 좋아 정식 오픈까지 이어진 것이다. 김 대표는 “매출 상승보다 신학대 캠퍼스 안에 들어간 것 자체가 의미 있다. 로고 콜라보 제품은 외국인 손님과 유학생에게도 인기”라며 “교회가 다음세대에게 친숙한 문화공간으로 다가가도록 쇼핑하듯 들어와 찬양이 흐르는 곳에서 하나님나라 이야기를 접하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힘주어 말했다.
질병과 무너짐 속 만난 ‘웨이메이커’
김 대표의 창업 배경엔 신앙적 경험이 자리 잡고 있다. 청년 시절 해외 주재원 생활과 프리랜서 활동을 거치며 사업을 키워 나가던 그에게 2019년 예상치 못한 건강 이상 신호가 연이어 찾아왔다. 이석증, 자율신경계 이상, 공황장애, 당뇨 등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들이었다.
결정타가 된 건 첫째 딸을 안고 있다가 허리와 등에 번개 같은 통증이 몰아쳐 응급실로 실려간 날이었다. 그는 “아이조차 지켜주지 못하는 무력함 앞에서 육적인 질주가 멈추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시작됐다”며 “입원과 회복의 시간 동안 회개의 눈물을 흘렸고 이후 약 2년 반 동안 주님 앞에 엎드려 기다렸다”고 회상했다.
그는 당시의 시간을 “단순한 고난이나 훈련을 넘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인생의 가장 귀한 선물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 기간을 거치면서 모든 육적 소유를 정리했다. 복음의 빛 앞에서 어둠 속 촛불 같은 것들은 아무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다”며 “그 경험이 저를 비로소 온전히 하나님께로 이끌었다”고 말했다.
이후 날마다 교회에서 한 시간 이상 기도하던 그는 민수기 23장 19절 말씀과 함께 주님은 길을 여시는 분이라는 뜻의 웨이메이커라는 단어를 마음에 받았다.
“찬양을 찾아 듣고 말씀을 붙잡으면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끝까지 믿음으로 지키겠다는 결단을 하게 됐습니다.” 그 결단은 곧 “패션계에서 다소 무시당하던 크리스천 이미지를 벗어나 웨이메이커를 통해 최초이자 최고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통로가 되겠다는 약속”으로 구체화됐다. 교회 1층 매장이라는 비전은 기도 중 떠오른 이미지와 담임목사의 격려가 맞물려 실현됐다. 2022년 12월 사업자 등록을 마치고 이듬해 여름 매장을 열었다. 한 달 뒤 교회에서 오픈 예배를 드리면서 본격적인 사역이 시작됐다.
말씀에서 시작되는 디자인
웨이메이커 제품에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신앙 메시지가 담겨 있다. 브랜드 초기 콘셉트는 민수기 말씀을 기반으로 한 ‘노 터닝 백’(No Turning Back·세상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단)이었다. 이후 ‘피스메이커’(갈 5:13), ‘원웨이’(시 110:3), ‘러브 원 어나더’(고전 13장) 등 성경 말씀을 주제로 한 시리즈를 차례로 선보였다.
올해는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을 주제로 파올로 베로네세의 명화 ‘가나의 혼인잔치’(요 2:1~11) 장면을 그림으로 풀어낸 ‘기적 시리즈’를 출시했다. 김 대표는 “쓰러졌던 내가 다시 일어난 것도 기적이고, 지금 이 사업을 계속할 수 있는 것도 기적”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의 디자인 작업도 찬양과 예배, 기도를 통해 영감을 받고 주제 말씀을 받으며 시작된다. 그는 “광야 같은 시간을 지나면서 내 힘으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절감했고 그 경험이 오히려 하나님을 향한 의지와 믿음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흘려보내는 통로’… 청지기의 사명
사업 운영 방식에서도 경제적 이익보다 하나님의 기쁨을 따르는 것을 우선한다. 김 대표는 “잠언 11장 25절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는 말씀처럼 웨이메이커는 자원을 움켜쥐는 기업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그는 유리한 조건의 계약임에도 추가된 조항을 하나님의 뜻 안에서 분별하고 거절한 적이 있다. 주변에서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는 “주님 안에서 승리했다는 기쁨으로 그 결정을 받아들였다”면서 청지기의 사명을 거듭 강조했다.
“우리가 가진 것은 우리만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입니다. 청지기 정신을 가지고 그분의 계획 안에서 더 큰 선을 이루기 위해 존재합니다.”
글·사진=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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