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배드민턴 국가대표 남자복식의 간판 서승재-김원호(이상 삼성생명) 조는 올해 고속성장을 거듭하며 국제대회 우승 트로피를 휩쓸고 있다. 지난 1월 248위로 출발했던 남자복식 세계랭킹은 어느덧 1위가 됐다. 이제는 전 세계 선수들의 집중 견제를 이겨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한 배를 탄 두 선수의 목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실력을 끌어올리는 것만이 해결책이라고 입을 모았다. 서승재는 “아직 부족하다. 경험치가 쌓여 더 단단해지면 성적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며 “원호와 세계선수권대회, 2026 아이치·나고야아시안게임, 2028 LA올림픽까지 계속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김원호는 “경험이 많은 승재 형과 뛰고 있으니 더 자신 있게 플레이를 하겠다. 결과보다는 준비 과정에 집중해 같이 성장하는 파트너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서승재와 김원호는 각각 1997년생, 1999년생으로 두 살 차이다. 유망주 시절이던 2017년과 2018년 복식 조를 이뤘다가 올해 7년 만에 재결합했다. 오랜 호흡 공백기가 있었지만 환상의 조합을 자랑하며 단숨에 세계 최고의 복식 조로 올라섰다. 배드민턴 최고 권위의 전영오픈을 비롯해 말레이시아오픈, 인도네시아오픈, 독일오픈, 일본오픈까지 올해만 다섯 차례 국제대회 정상을 터치했다.
이달 초 경기도 용인 삼성트레이닝센터(STC)에서 만난 서승재는 “원호와 다시 한 조로 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서로 성장한 모습을 보면서 예전보다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고 운을 뗀 김원호는 “그 전보다 무조건 잘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되돌아봤다.
두 선수는 “서로가 잘 맞는 부분이 많다”며 평소 성향이나 생각이 비슷한 점을 찰떡 호흡의 비결로 꼽았다. 서승재는 “둘 다 코트 안팎에서 소통을 어려워하지 않는다. 경기만 잘한다고 해서 좋은 파트너십이 생기진 않는다”며 “하루하루 부족한 부분을 메워나간다는 생각으로 준비한다”고 말했다. 김원호는 “형이나 저나 배려하고 채워주려고 하는 스타일이다 보니 시너지 효과가 크게 나는 것 같다”고 맞장구를 쳤다.
진천국가대표선수촌은 물론 소속팀에서도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다. 서승재는 “대회에 나가면 같은 방을 쓴다. 코트 밖에서도 일종의 훈련을 이어가는 과정이 있다”고 귀띔했다. 김원호는 “훈련이 없어도 형과 시시콜콜한 배드민턴 얘기를 자주 나눈다. 다른 선수들의 영상을 찾아보고 연구하거나 고민하는 시간이 많다”며 웃어 보였다.

두 선수는 올해 남자복식에 전념하고 있다. 이 또한 상승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서승재는 “몸이나 체력 관리에 유리한 부분이 있다. 알고 보면 혼합복식과 남자복식이 기술적으로도 다른 부분이 많다”며 “남자복식에만 투자할 시간이 생겨 기술을 정교하게 다듬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혼합복식을 병행했던 이들은 동료이자 경쟁자였다.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혼합복식 4강전에선 결승행 티켓을 두고 맞붙었다. 정나은(화순군청)과 짝을 이룬 김원호는 혼신의 힘을 다했다. 이전까지 상대 전적 5전 전패의 열세를 안겼던 서승재-채유정(인천국제공항) 조를 꺾고 결승에 올라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원호는 “모든 걸 다해서 후회 없이 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4강전을 마친 뒤 형이 먼저 축하 인사를 건넸는데, 제가 그 입장이었으면 그렇게 못 했을 것 같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서승재는 “저 역시 최선을 다하고도 졌던 터라 후회 없이 축하를 해줬다”고 말했다.
하나로 뭉친 서승재-김원호 조는 지난달 22일 세계배드민턴연맹(BWF)이 발표한 세계랭킹에서 당당히 최상단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 남자복식 조가 세계랭킹 1위에 오른 건 2016년 이용대-유연성 조 이후 9년 만이다. 이들 조는 2010년 이후로 남자복식 톱10 진입 후 가장 빠른 기간에 1위에 오르는 기록까지 남겼다. 지난 5월 20일 톱10에 진입한 두 선수는 63일 만에 1위에 등극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증명했다.
김원호는 “어릴 때부터 삼았던 1위 목표를 이뤄 영광스럽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에 걱정도 되지만 지금껏 해왔던 대로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서승재는 “부담감이 없진 않겠지만 매일 최선을 다하면 지금처럼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덤덤히 말했다.
혼합복식 경험은 소중한 자산이다. 서승재는 “둘 다 올라운더 스타일이라 역할을 세세히 정하지 않고도 코트가 척척 메워진다. 원호는 빈 곳이 보이면 알아서 치고 들어가 주는 플레이가 많다”고 설명했다. 김원호는 “저는 드라이브 게임을 좋아하는데, 승재 형은 커버 범위가 워낙 넓다. 컨트롤이나 코트 활용 능력도 좋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동시에 머릿속으로는 보완점을 챙기고 있었다. 서승재는 “이젠 1위를 지켜내야 하는 입장이다. 네트 플레이의 정교함을 높이고 싶다”고 남은 과제를 언급했다. 김원호는 “중간 볼 배급이나 후위 움직임 등 다듬을 부분이 많다”고 털어놨다.
이들은 승승장구에도 ‘셔틀콕 퀸’ 안세영(삼성생명)의 압도적 활약에 더러 가려지는 경우가 있다. 파리올림픽 정상에 오른 안세영은 올해 국제대회에서 6번 우승했다. 5회 우승의 서승재-김원호 조에 한발 앞선다.
김원호는 “세영이가 한국 배드민턴의 위상을 높여줘 동료 선수들도 혜택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더 열심히 잘하는 선수가 되겠다는 마음이 생긴다”고 힘줘 말했다. 서승재는 “사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세영이가 가장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을 거다. 배드민턴 인기와 관심도를 높여줘 오히려 고맙게 생각한다”며 “저희는 묵묵히 남자복식의 위상이 높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서승재-김원호 조는 오는 25일부터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 나선다. 서승재는 2023년 코펜하겐 대회에서 남자복식과 혼합복식 금메달을 따내며 2관왕에 올랐다. 올해 대회 장소는 파리올림픽이 펼쳐졌던 포르트 드 라샤펠 아레나다.
김원호는 “승재 형이 있어 든든하다. 지난해 올림픽 2위를 했던 장소에서 1위에 도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서승재는 “작년에 원호에게 졌던 장소에서 경기한다. 좋은 기억이 많은 원호가 저를 잘 이끌어 줄 거라 기대한다”며 “이번엔 같은 팀으로 영광을 이루겠다”고 다짐했다.
이들 조의 최종 목표는 올림픽 남자복식 금메달이다. 서승재는 2020 도쿄올림픽과 2024 파리올림픽에서 입상에 실패했다. 서승재는 “앞선 두 차례 올림픽을 치르면서 조금씩 성장해왔다고 생각한다. 원호와 올림픽까지 동행한다면 그 성장의 재미를 크게 느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원호는 또 다른 이유로 올림픽 정상을 꿈꾼다. 그의 어머니는 배드민턴의 전설 길영아 삼성생명 감독이다. 길 감독은 1992 바르셀로나올림픽 여자복식 동메달, 1996 애틀랜타올림픽 혼합복식 금메달과 여자복식 은메달을 땄다. 김원호는 “올림픽 금·은·동메달을 모두 수집한 어머니의 커리어를 뛰어넘는 게 쉽진 않겠지만 도전을 하고 싶다”며 “어머니가 자연스럽게 ‘김원호 엄마’로 불리도록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서승재는 김원호와의 ‘케미 점수’를 100점 만점에 80점으로 매겼다. 그는 “지금까지 결과는 좋지만 운이 많이 따라줘 우승한 적도 있다. 아직 채울 게 많다”고 이유를 밝혔다. 김원호는 보다 후한 85점을 줬다. 김원호는 “결과만 놓고 보면 100점인데, 앞으로 더 잘할 수 있다고 본다. 형과 함께 나머지 15점을 채우겠다”고 말했다.
용인=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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