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정부 출범 후 집중투표제·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 재계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국회 본회의가 열리는 오는 4일에는 상법 개정안이 상정될 전망이다. 상법 개정에 속도가 붙으면서 CJ, 롯데 등의 지배구조와 승계 전략에 제동이 걸렸다. 자사주 활용과 대주주 의결권에 제약이 걸리면서 오너 일가의 지분 확대 구상도 복잡해졌다.
3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자사주 소각 의무가 법제화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주요 그룹의 지주사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자사주는 법적으로 의결권이 없지만 오너가의 승계 전략에서 핵심 도구로 쓰여 왔다. 대주주가 자사주를 우호세력에 매각해 지분을 확대하거나, 합병 시 자사주를 활용해 기존 지분 희석을 막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롯데지주는 이번 개정안의 대표 타깃으로 꼽힌다. 롯데지주는 현재 전체 지분의 27.5%를 자사주로 보유 중이다. 지난해 말 32.5%였던 지분은 최근 5%가량을 롯데물산에 매각하며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롯데 측은 “2017년 지주사 전환 당시 발생한 구조적 자사주”라 해명했지만, 개정된 법 아래서는 자사주 자체가 지배력 확보 수단으로 인정받기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비상장 외국계 법인을 통한 우회 지배 역시 ‘투명한 지배구조’라는 개정 취지와 충돌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신동빈 회장은 일본 롯데홀딩스를 통해 호텔롯데와 롯데지주로 이어지는 간접 지배 구조를 유지해왔다. 이와 동시에 롯데지주 지분 13%를 직접 보유하며 영향력을 보강하고 있다.
개정안이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모든 주주’로 확대한 만큼 책임 추궁 가능성도 커졌다. 롯데웰푸드 소액주주들은 지난 28일 신 회장 등 전·현직 이사 17명을 상대로 273억원 규모의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다. 2022년 빙과류 담합 과징금(118억원)과 신 회장의 과도한 중복 보수 수령(롯데웰푸드 154억원 등)이 쟁점이다. 이달 초 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와 맞물려 주주권 행사 움직임도 현실화했다는 분석이다.
CJ그룹과 관련해서는 비상장 자회사 CJ올리브영의 향후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이재현 회장의 아들인 이선호 CJ제일제당 식품성장추진실장(지분율 11.04%)과 딸인 이경후 CJ ENM 브랜드전략실장(4.21%)이 CJ올리브영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재계 안팎에서는 CJ 오너가에서 CJ올리브영 상장을 통해 자금을 마련하고, CJ㈜ 지분을 매입하는 승계 시나리오가 유력하게 거론돼 왔다. 그러나 상법 개정안으로 자사주 활용이 제한되고, 지주사 디스카운트를 감안한 기존 상장 전략의 실익도 낮아졌다.
대안으로는 CJ㈜와 CJ올리브영 간 합병 가능성도 부상하고 있다. 최근 CJ올리브영은 신한계 특수목적법인(SPC) 한국뷰티파이오니어가 보유하던 지분 11.3%를 매입해 자사주 비중을 22.57%로 늘렸다. 이를 모두 소각하면 이선호·이경후 두 실장의 지분율은 14.3%, 5.4%까지 상승한다. CJ그룹 관계자는 그러나 “승계 작업은 진행되지 않고 있다”며 “시장에서 떠도는 이야기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상장사 76.7%가 상법 개정이 기업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 답했다. 다만 이번 개정이 대주주 중심 경영에서 벗어나 투자자 권한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거란 분석도 적잖다. 이준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상법 개정 기대감에 지주회사의 주가가 오르는 등 긍정적 흐름도 감지된다”며 “장기적으로는 경영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해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지배구조가 정착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다연 기자 id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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