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저녁 세종시 한 상가 밀집 지역의 인도 한복판으로 배달 오토바이가 뛰어들었다. 오토바이가 퇴근길 행인과 가로수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달리자 놀란 보행자들이 고함을 쳤다. 오토바이 운전자는 뒤에서 자신을 쏘아보는 행인들에게 가볍게 손을 들어 미안함을 표하며 가던 길을 그대로 갔다.
배달 오토바이의 난폭 운전은 보행자와 다른 일반 운전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충청권 학부모 A씨는 “아파트 내부에서 인도와 차도를 넘나드는 배달 오토바이들이 아이들과 충돌할까 늘 노심초사한다”고 말했다. 인천에 사는 20대 B씨는 “택시 문을 열자마자 차량과 인도 사이를 지나려던 신호위반 오토바이가 문에 와서 부딪혀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있다”고 했다.
코로나19로 배달업이 일상으로 파고든 뒤 배달 오토바이들의 난폭 운전은 흔한 풍경이 됐다. 배달 시간에 쫓기는 이유도 있지만 콜을 더 빨리 받기 위해 위험하게 운전할수록 많은 이익이 돌아오는 수익 구조 탓이 더 크다. 하지만 교통 안전을 해칠 뿐만 아니라 배달 오토바이 운전자 본인도 위험에 노출된다. 실제로 배달 오토바이 운전자는 대표적인 ‘산재 고위험군’이 됐다.
고용노동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1위 배달앱 배달의민족의 물류를 담당하는 ‘주식회사우아한청년들’은 2022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4년 연속 산업재해 사상자 1위를 차지했다. 근로복지공단의 산재보상 승인 자료를 기반으로 산출된 결과다.
2021년 916명이었던 우아한청년들의 산재 사상자는 지난해 2026명으로 3년 동안 121% 증가했다. 올해 1분기에도 우아한청년들의 산재 사상자는 527명으로 2위인 쿠팡이츠(241명)보다 배 이상 많았다. 지난해부터 쿠팡이츠가 대우건설을 밀어내고 2위로 올라서면서 산재 사상자 수 1, 2위를 모두 배달 업체가 채웠다.
배달 업체가 산재 사상자에서 제조업, 건설업 등을 앞지른 배경에는 코로나19 이후 확장된 플랫폼 노동 시장이 자리한다. 특히 배달라이더에 대한 산재보험 적용이 확대되면서 이들의 산재보상 승인 건수도 덩달아 증가했다.
다만 중대재해는 여전히 건설업, 제조업 중심이다. 이들 업종에서 전체 산재 사망 사고의 70% 이상이 발생하고 있으며 떨어짐, 끼임, 부딪힘 같은 재래형 사고가 주를 이룬다.
부상자를 포함한 사상자 수 증가 폭은 배달업종이 더 가파르다. 배달업이 포함된 운수·창고·통신업은 2021년 사상자 9134명에서 지난해 1만5982명으로 75% 증가했다. 건설업 사상자는 2021년 2만6773명에서 2만41명으로 소폭 줄었고, 같은 기간 제조업은 2만4212명에서 2만4355명으로 비슷했다.
배달 플랫폼 알고리즘, 배달 수수료 등 위험 운전을 할수록 경제적 보상으로 이어지는 수익 구조가 문제로 지적된다. 라이더들은 끊임없이 쏟아지는 앱 알림 때문에 운전 중 앱을 조작하거나 확인하는 일이 잦다. 구교현 라이더유니온 지부장은 “콜센터 인력을 늘려 전화 및 문자 응대를 전담케 함으로써 라이더들은 배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폭우, 폭설 등 위험한 기상 환경에서의 배달에 더 높은 수수료를 지급하는 인센티브 체계 역시 사고 확률을 높인다. 배달의민족은 지난 10~14일 일부 라이더를 대상으로 260건의 배달을 달성하면 30만원을 지급하는 폭염 프로모션을 실시했다. 시간당 약 3개의 호출을 처리해야 달성 가능한 목표치다.
구 지부장은 “평상시와 추가 수당을 받을 때 배달료 차이가 너무 커 오히려 위험한 날에 라이더들의 속도 경쟁이 과열된다”며 “평소 수수료 수준이 낮아 라이더들이 근무일을 무리하게 늘리면서 과로가 오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부족한 교육·훈련도 사고 원인이다. 업계에 따르면 입직 후 6개월 이내 라이더들에게서 발생한 사고가 전체 산재의 70~80%를 차지한다. 배달 플랫폼들은 자사 서비스에 참여하는 라이더들에게 법이 규정하는 온라인 교육 2시간만 의무화하고 있다.
현장에선 초보 라이더들의 사고 위험을 낮추려면 오프라인 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동차용 1, 2종 보통면허만 있으면 누구나 라이더로 일할 수 있다. 자동차 면허가 있어도 오토바이 운전 경험은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때문에 배달 플랫폼 신규 입직자에게 이륜차 전용 면허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라이더의 교통안전 교육 이수를 의무화하는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생활물류법) 개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우아한청년들은 지난 2월 ‘라이더 안전경영위원회’를 출범시키는 등 자체 노력에 나섰다. 안전경영위원회는 라이더 설문조사 등을 바탕으로 사고요인 연구, 중상해 재해 특화 프로그램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하지만 수익 구조 등 개선 없이 자체 노력만으론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앱과 알고리즘이 노동자 안전과 관련해 중요한 위험 요인”이라며 “(폭우, 폭설, 폭염 등) 프로모션에 의한 운임의 변동 폭을 줄이고 기본 운임을 안정화하는 등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세종=황민혁 기자 ok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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