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핵보유국인 영국과 프랑스가 핵무기 사용 공조에 사상 처음으로 합의했다. 유럽에 대한 위협에 양국이 공동 대응한다는 내용으로 사실상 유럽 전역에 핵우산을 펼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유럽 방위에 미국 의존도를 줄이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영국을 국빈방문 중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9일(현지시간) 양국의 핵전력 공조에 합의했다. 영국 정부는 “영국과 프랑스의 중대 국익을 위협하는 적은 양국의 핵전력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유럽에 가해지는 어떤 극단적 위협도 양국의 공동 대응을 촉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엘리제궁(프랑스 대통령실) 관계자는 “동맹과 적대세력 모두에 대한 메시지”라고 말했다. 두 나라는 핵 대응을 조율할 협의체도 신설하기로 했다.
이번 합의는 러시아의 안보 위협에 맞서 공동 대응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프랑스와 영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이지만 그간 양국의 핵무기는 집단방위 의무와 독립적인 것으로 간주됐다. 양국이 보유한 핵탄두는 합쳐서 515기 정도다. 미국(5177개)과 러시아(5459개)에 비하면 적지만 한 발로도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만큼 핵 공조가 강력한 억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나토 집단방위 참여에 회의적 시각을 드러내고 있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은 영국과 프랑스의 핵 억지력 활용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촉구해 왔다. 특히 마크롱 대통령은 “미국이 우리 편에 남아 있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며 논의를 주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 협정은 양국의 핵우산이 유럽 전역으로 확대될 것임을 시사한다”며 “미국이 제공하던 안전망으로부터 독립성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필립스 오브라이언 세인트앤드루스대 교수는 “미국과의 ‘탈동조화’를 직접적 언급 없이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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