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민생 회복을 위해 빚까지 내가며 마련한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에 지역구 ‘쪽지 예산’이 껴 있었던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다. 정부안으로 포장돼 신규로 포함된 지역구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규모가 5000억원에 육박한다. 여기에 더해 ‘호남고속도로 구간 확장’ 사업과 ‘피지컬 인공지능(AI)’ 시범사업 등이 막판에 추가 편입됐다. 사업의 수혜 지역은 주로 여당 지역구다. 여당의 쪽지 예산 행태가 정부의 추경 편성 취지를 훼손한 것은 물론 국가 재정을 사유화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2차 추경 중 SOC 예산 규모는 2조7000억원이다. 지역 건설경기 활성화를 명목으로 삼아 편성한 예산이다. 그런데 해당 예산을 정부가 설계할 때부터 정치권 입김이 작용했다. 8일 국민일보 취재 결과 이 중 4607억원은 지역구를 위한 쪽지 예산 성격이 강한 사업이다.
국립대학, 병영시설 등을 개보수하는 사업이 해당 예산에 포함돼 있다. 전남 나주시에 위치한 한전에너지공대는 정부출연금 100억원을 챙겨갔다. 정부 관계자는 “민생 관련 자금 지원 외에 지역에 시설을 지어주는 사업은 민원성 요구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귀띔했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 추가된 SOC 관련 쪽지 예산도 있다. 광주 동광주-광산고속도로 확장공사 예산이 183억원 증액됐다. 기재부는 지난 4일 보도자료를 통해 최종적으로 SOC 예산이 200억원가량 늘어났다고 밝혔다. 이 사업은 심의 과정에서 유일하게 편입된 SOC 쪽지 예산으로 분류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광주시가 지자체 분담금을 부담하지 못하겠다고 버텨 연내 처리가 불가능한 사업이었는데 심사 때 전향적으로 입장을 바꿔 증액됐다”고 설명했다.
당초 정부는 하반기 처리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한 지역 SOC 사업을 지출 구조조정 대상에 올렸다. 이에 가덕도 신공항 예산 8649억원 가운데 공사비 5223억원은 추경 편성 과정에서 삭감됐다. 그럼에도 정부안에 애초부터 포함되거나 심의 과정에 끼워넣은 지역구 예산의 상당수가 살아남으면서 뒷말이 나온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지역이기주의로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
쪽지 예산을 의심케 하는 사례는 SOC 관련 예산 외에도 적지 않다. 국회는 심의 과정에서 신산업 분야 투자 촉진 명목으로 1000억원을 증액했다. 당초 정부안에 없던 피지컬 AI 선도모델 설계 및 실증 예산이 426억원 증액됐다. 전북도가 229억원, 경남도가 197억원을 가져가는 것으로 분배됐다.
사업 수혜 지역은 주로 여당 의원의 지역구다. 2차 추경이 국회를 통과하자마자 호남권 지방자치단체는 예산 확보를 자랑하고 나섰다. 전북도는 4787억원, 전남도와 광주광역시는 각각 2042억원과 994억원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 예산에는 민생 사업과 ‘쪽지 사업’이 혼재돼 있다.
국회의 쪽지 사업 관행이 여전하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지난해 11월에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불투명한 의사결정과 쪽지 예산을 겨냥해 감사가 이뤄졌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추경뿐 아니라 전체 예산을 심의할 때도 위원장, 당 지도부 몫을 정해놓곤 한다”며 “지역별로 순번을 정해놓기도 한다”고 말했다.
세종=이누리 기자 nur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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