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수업으로 인간다움 회복… 위기 청소년에 답을 주다

“중학생 때까지 제 이름도 못 쓰던 한 아이는 인문학을 공부하며 노래에 관심을 갖게 됐고, 지금은 서울 홍대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며 가수를 꿈꾸고 있습니다. 어릴 적 부모님의 폭력으로 방황하던 다른 친구는 저 같은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고요.”

최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난 주원규(50) 동서말씀교회 목사의 차분한 목소리에서는 기쁨이 묻어나왔다. 가정환경이 좋지 않아 보살핌을 받지 못했거나 의지할 어른 없이 세상을 불신하던 청소년들이 조심스럽게 미래를 그리는 달라진 모습을 떠올리면서다. 소설가이자 드라마 작가로도 활동하는 그가 위기 청소년들과 함께 인문학 수업을 진행하며 목격한 기적이자 변화였다.


주 목사는 2009년 목사 안수를 받고 지금까지 200명에 달하는 위기청소년에게 인문학 수업을 진행했다. 그의 수업은 글쓰기가 병행한다. 상처받고 의지할 곳 없는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져 생각할 거리를 준다. 자신은 물론 세상을 이해하는 것을 돕는 과정이다.

위기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그의 수업엔 정해진 장소나 시간, 정형화된 수업 방식이 없다. 장소는 카페 편의점 등 청소년이 마음 편히 찾아올 수 있는 곳으로 한다. 수업 주제는 영화 드라마 가요 등 청소년들의 관심사를 기반으로 정한다.

주 목사는 “‘이 인물이 이런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등 질문을 하고, 떠오르는 생각이나 영감을 휴대전화 메모장이나 카카오톡 단체방에 단어로 적는 키워드 중심 수업을 한다”며 “문장을 쓰기 어려워하는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주 목사가 생각하는 인문학 수업은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통로’다. “인문학은 ‘배운 이들의 교양을 위한 학문’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다움을 배우는 학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0대 청소년에게 꼭 필요한 과정이죠. 특히 요즘처럼 감수성이 메마른 시대일수록 인문학은 영혼을 위한 토양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을 믿지 않은 위기청소년들에게 인문학 수업을 듣게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다. 집을 나온 청소년들이 찜질방에 갈 돈을 주지 않으면 수업에 오지 않겠다고 갑자기 통보해 수업 공간인 카페에 덩그러니 앉아있던 적도 많다.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경우가 많아 청소년들이 주먹을 휘두르는 일도 적지 않다. 그러나 주 목사는 “저 역시 학창 시절 가난한 동네에서 학교에 다니며 경험한 학교 폭력과 체벌로 정서적 어려움을 겪었다”며 “크리스천인 한 어른을 통해 인문학을 접한 뒤 엇나가지 않고 성장할 수 있었다. ‘우범소년’이 ‘우범성인’으로 크지 않도록 돕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보호관찰 청소년과 그룹홈, 소년원의 청소년들을 만난다. 가정의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해 마음을 다친 이들이 대다수다. 그는 그런 청소년을 대상으로 6개월가량 꾸준히 만나며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물론 이후에도 패스트푸드점 등에서 정기적인 모임을 하면서 연락을 이어간다.

주 목사는 “아이들을 가르치려 들거나 훈계하지 않고 그저 답을 찾아갈 수 있게끔 들어주고 공감해주니 거칠고 폭력적이던 아이들도 어느덧 닫힌 마음을 열더라”며 “수환(가명·19)이는 ‘목사님을 따라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다’며 수시전형으로 대입을 준비하고 있고 은비(가명·18)는 웹소설 작가를 장래희망으로 삼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두 아이 모두 어린 시절 폭력적인 부모로부터 분리 조치를 당하는 등 마음에 상처가 크고 어른에 대한 신뢰나 좋은 어른에 대한 이미지가 전혀 없었다”며 “지금은 두 아이 모두 인문학 수업을 통해 미래에 대한 소망을 품었으며, 복음을 접한 뒤 교회도 다니고 있다”고 덧붙였다.

로고스서원(대표 김기현 목사)도 주 목사처럼 위기청소년과 인문학의 접점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로고스서원에서 1년 이상 인문학을 공부한 이들이 강사로 활동하며 줌(Zoom) 수업을 통해 청소년회복지원시설 등에서 생활하는 청소년을 만나고 있다. 수업 참여자들은 한주 한 권의 책을 읽고 글을 써오며, 수업 시간에 발표하면서 소감을 말한다. 상대 글에 대한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나눈다.

7명의 인문학 강사 중 한 명인 김서은(27)씨는 최근 국민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수업을 통해 만난 아이들이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동안의 쓸쓸했던 것과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다’고 말할 때 인문학을 통해 아이들이 변화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사랑까지 알게 되는 것 같아 감사하다”고 말했다.

위기청소년을 향한 한국교회의 따뜻한 시선과 관심이 절실하다. 주 목사는 “아이들이 부담스러워하는 제도화나 시스템을 마련이나 전도를 우선하기보다는 자발적으로 나서는 개인들이 위기청소년을 위한 느슨하지만 따뜻한 연대를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며 “인문학 수업은 위기청소년에게 인간다움을 회복할 수 있으며 나아가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승현 기자 cho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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