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의 인사이트] 새 대통령이 하지 말아야 할 일들

내일이면 제21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선출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시대착오적인 비상계엄 선포와 그에 따른 대통령 파면으로 두 달 만에 번갯불에 콩 굽듯이 졸속으로 치러지는 선거다. 1992년 기자 초년병 시절에는 유권자들에게 돈봉투를 돌렸다는 시민단체 제보를 받고 취재를 하러 지방 현장을 쫓아다녔다. 대선 후보 유세 현장을 함께 찾았던 경찰서 정보과 형사는 민주화운동 투사의 이름을 따서 아들 이름을 지었다. 그 야당 후보가 대선에서 패배한 뒤 이듬해 정계은퇴 선언을 하고 영국 유학길에 오르자 함께 슬퍼했다.

2000년대 들어 인권 변호사 출신의 서민 대통령이 탄생했을 때는 밤을 꼬박 새우며 뉴스를 보고 또 보고 했던 기억이 난다. 언제부턴가 이런 감흥이 없어졌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아니면 존경할 만한 지도자가 없어서일까. 지난 대선이 덜 나쁜 사람을 뽑는 차악 선거였다면 이번 선거는 말 그대로 복불복 선거다.

5개 재판을 받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전직 대통령이 쏘아올린 비상계엄령의 최대 수혜자다. 우여곡절 끝에 3주 전 등록한 국민의힘 후보도 극우세력에 한 발 기대고 있어 미덥지 않긴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박근혜 키즈’로 정치에 입문한 젊은 후보가 세대교체를 성공적으로 이뤄내고 미래에 희망을 줄 것 같지도 않다. 과거의 금품·부정선거는 가족 비위를 들춰내는 폭로 비방전으로 얼룩지고 시정잡배 같은 욕설과 입에 담기 거북한 음담패설, 인격모독이 난무한다. 인성이나 도덕적 잣대는 사라졌다. 여당 후보가 청렴한 민주화 투사 같고, 야당 후보는 기득권에 기생한 웰빙 후보 같은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래저래 우울한 대선이다. 그래도 국민의 저력을 믿는다. 오만한 권력을 심판하고 위기 속에 대한민국을 바로 세운 것은 항상 국민이었다.

암울한 군사독재정권을 거쳐 모진 고문과 폭력을 이기고 얻어낸 값진 민주주의다. 베네수엘라나 페루 같은 남미 국가 수준으로 곤두박질친 국가신뢰도를 끌어올리고 입법·사법·행정 등 3부가 서로 견제하며 민주주의를 잘 돌아가게 하도록 원위치시켜야 할 책무가 새 대통령 앞에 놓여 있다. 권력기관을 정권의 하수인으로 만들지 말기를 바란다. 취임 연설 때는 통합, 화합을 외치면서 임기 내내 개혁, 적폐청산 등을 명분으로 되풀이되는 복수혈전에 국민은 지쳤다. 대통령이 되면 아예 상대 진영의 싹을 잘라버리겠다는 심산으로 정치보복에 나서지만 결국 상대를 향했던 비수가 부메랑이 돼 돌아온다는 것을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양당의 대선 후보 모두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을 한 전력이 있고 민심을 듣겠다며 경기지사 시절 2년8개월간 택시운전대를 잡거나 기본소득을 주창하며 서민들의 삶에 관심을 가졌던 만큼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부의 불균형을 줄여주길 기대한다. 그렇다고 근로의욕이나 자본주의 근간을 흔들면서 정당하게 부를 축적하는 것에 대해 징벌적 제도를 부과해선 안 될 것이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가 출범하면서 전 세계가 관세전쟁을 치르고 있다. 세계 경제성장률이 둔화하는 가운데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은 올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0.8%로 전망했다. 최근 30년간 우리 경제가 1% 미만 성장한 것은 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 팬데믹 등 장기간 위기를 겪었던 때뿐이다. 새 대통령은 경제 살리기에 힘을 쏟아야 한다. 야당과의 협치를 통해 세계 각국의 자국 이기주의 공세를 막아내고 인공지능(AI) 등 급변하는 변화에 맞춰 먹거리 창출에도 매진해야 한다. 정적 숙청과 정치보복으로 허비할 시간이 없다.

정권마다 반복되는 전 정권 지우기와 선거 공신들을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에 낙하산으로 내려보내는 논공행상도 없어야 한다. 전직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구중궁궐 청와대를 나와 용산으로 옮겼는데 정권 바뀔 때마다 대통령 집무실을 옮겨 다닌다면 우스운 일이다. 백년대계는 아니더라도 장기적인 플랜에 따라 폭넓은 의견수렴을 통해 전 정권이 벌여놓은 일도 괜찮다 싶으면 이어가야 한다. 무엇보다 대통령 자리는 국민을 섬기는 자리다. 내편 네편 갈라치는 반쪽 대통령이나 제왕적 대통령은 끝내야 한다. 3년 임기단축과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을 추진하는 밀알이 돼 박수받으며 떠나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이명희 논설위원·종교전문기자 mheel@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