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윤의 딴생각] 자유로를 달려 자유로

입력:2025-05-24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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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인생을 살면서 필수적으로 익혀야 하는 기술이 있으니, 그건 바로 운전이라고 말이다. 대부분 자식이 그렇듯 나 역시 아버지의 말씀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차를 살 돈도 없었지만 차가 있더라도 그걸 끌고 갈 곳도 없었다.

무엇보다 도로 위에서 위협을 당할 때, 어머니처럼 차창을 스윽 내리고서 상대 운전자를 째려볼 깡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남자가 우리 집 앞으로 나를 데리러 왔다. 아버지는 그의 차에 나를 억지로 밀어 넣었다. 그 남자는 다름 아닌 운전면허학원 승합차 기사님이었다.

스펀지처럼 뭐든지 쭉쭉 흡수하던 20대 초반이었으므로 운전면허를 어렵지 않게 따기는 했다. 어머니는 그런 나에게 당신 차를 운전해 보라며 운전대를 내주었다. 단 조건이 있었다. 30㎞ 이상으로는 달리지 말 것.

어머니의 감독 아래 편도 1차로를 달리고, 아니, 기어가고 있었다. “빵빵!” 내 뒤로 따라붙은 차들이 경적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액셀을 지그시 밟는 나에게 어머니가 이를 꽉 물고서 경고했다. “신경 쓰지 마. 속도 유지해.” 정수리부터 솟아난 땀이 온몸을 적셨다. 그날 이후 운전대를 잡지 않았다.

그렇게 20년이 흘렀다. 그동안은 별다른 불편함 없이 살아왔지만 차가 꼭 필요한 일이 이따금 생기기 시작했다. 때마침 형부가 차를 처분하려 한다기에 헐값에 넘겨받았다. 운전까지 가르쳐준다고 했으니 공짜나 다름없었다. 운전은 가족에게 배우는 게 아니라지만 형부라면 믿을 만했다. “유리와 유리가 부딪치면 깨지거든? 그러니까 설거지할 때는 조심해야 해.” 자기가 운영하는 카페 아르바이트생에게 이러한 사실부터 가르치는 사람이니 오죽하겠는가. 운전 연수 첫날 형부는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사람을 치면 큰일 나거든? 그러니까 운전할 때는 조심해야 해.”

형부는 사람을 치면 큰일 난다는 말로 병을 주고, 옆에서 잘 봐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로 약을 줘가며 나를 도로로 이끌었다. 도로에는 차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휴대전화를 보며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도, 시도 때도 없이 사방에서 튀어나오는 오토바이도, 난데없이 손수레를 끌고 나타난 할아버지와 알림판도 세워놓지 않은 채 쭈그리고 앉아 차선을 그리는 작업자도 있었다. 운전대를 잡은 손이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었다. 머리까지 따라 굳어버렸는지 ‘좌’가 왼쪽이고 ‘우’가 오른쪽인 걸 아는데도 좌회전과 우회전이 자꾸만 헷갈렸다.

“쉬운 길이랑 어려운 길이 있는데 어느 쪽으로 가볼래?” 형부가 나에게 선택권을 줬다. 겁에 질려 쉬운 길을 택하는 나에게 형부는 말했다. 그렇게 피하면 운전이 늘지 않는다고, 어려운 길을 거듭해서 가다 보면 운전이 편안해지는 날이 온다고, 운전에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아야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다고, 그러니 한번 시도해 보라고 말이다.

마음을 단단히 다잡고 액셀을 밟았다. 사람과 오토바이와 손수레를 요리조리 피해, 형부가 “좌회전” 하고 말하면 “왼쪽 좌!” 하고 외치고 “우회전” 하고 말하면 “오른쪽 우!” 하고 외치며 도로를 씩씩하게 누볐다.

운전석에서 벗어나 의자에 앉아 일을 하는데도 형부의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했다. 어머니의 잡도리에 운전대를 놓아버리는 것을 시작으로, 해외에서 공부할 자신이 없어 유학 갈 기회를 내 발로 차버리기도 하고 직장 생활을 견디기 힘들어 걸핏하면 사직서를 내밀기도 했다.

그동안 나는 선택의 기로 앞에서 쉬운 길만 택해왔던 건 아닐까.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기회를 목전에 두고 골목길만 뱅뱅 맴돌고 있었던 건 아닐까. 손을 대면 골치가 아플 것이 뻔해 거절하려 했던 일을 수락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선택한 어려운 길이 곧 편안함으로 가는 길일 거라 믿으면서.

“처음보다 많이 늘었네. 전에는 핸들 돌릴 때 꽃게처럼 깔짝거렸는데 지금은 자연스럽잖아.” “꽃게가 아니라 논크로스 핸들링이라고 하는 거거든요?” “누가 그래?” “유튜브에서요!” 좌충우돌 운전 연수는 오늘도 계속됐다. 운전하며 형부에게 말대꾸할 여유가 생긴 걸 보면 실력이 늘기는 는 모양이다. “이번에는 어디로 가볼래? 원래 다니던 길로 가려면 좌회전하면 되고, 자유로 타고 멀리 나가보려면 우회전하면 돼.” 형부가 나에게 또다시 선택권을 줬다. 나는 잠시 고민한 끝에 큰소리로 외쳤다. “오른쪽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