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교황 레오 14세가 즉위 후 첫 주일 기도에서 우크라이나 등 세계 각지의 전쟁 중단을 촉구했다. 또 그는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로 인공지능(AI)을 꼽았다.
AP통신에 따르면 레오 14세는 11일(현지시간)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서 부활 삼종기도를 집전하며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한 것처럼 제3차 세계대전이 조각난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세계의 지도자들에게 호소한다”며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크라이나에는 지속 가능한 평화가, 가자지구엔 휴전과 인질 석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도·파키스탄 분쟁에 대해선 “휴전을 환영한다”며 “주님께 평화의 기적을 내려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레오 14세는 전날엔 바티칸 시노드홀에서 추기경들과 첫 공식 알현 행사를 갖고 “오늘날 교회는 또 다른 산업혁명, 즉 AI의 발전에 직면해 있다”며 “이는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 노동을 보호하는 데 있어 새로운 도전을 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이 ‘레오 14세’를 자신의 교황명으로 선택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1878~1903년 재임한 레오 13세는 1891년 가톨릭교회 역사상 최초로 사회 문제만을 다룬 회칙을 반포해 현대 가톨릭 사회교리의 초석을 놓았다. 이 회칙은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지적하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이념의 문제점을 함께 비판하면서 복음적 시각을 바탕으로 대안을 모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국 가디언은 “새 교황은 자신의 이름을 선택하면서 19세기 말 사회정의를 가톨릭의 우선순위로 삼은 레오 13세와의 유대감을 표시했다”며 “트럼프 시대에 그런 목소리가 미국 억양으로 말해진다는 것은 전 세계에 중요한 메시지”라고 평가했다.
레오 14세는 전임자의 비전과 개혁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도 분명히 밝혔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2013년 사명 선언문인 ‘복음의 기쁨’을 자신의 행동 지침으로 제시하며 “가장 약하고 버림받은 이들을 돌보는 교회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또 “교황은 성 베드로부터 그의 부족한 후계자인 저에 이르기까지 오직 하나님과 형제들을 섬기는 겸손한 종일 뿐”이라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고 강조했다.
지난 8일 콘클라베에서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된 레오 14세는 첫 미국인 출신 교황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였던 전임자와 달리 미국인이기 때문에 트럼프와 다리를 놓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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