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완성차업체의 최대 관심사는 전기차 확산이다. 이 임무를 가장 충실히 수행해야 할 차량이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다. 앞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이 가장 치열할 것으로 전망되는 차종이기도 하다. 이 가운데 4종을 비교 시승했다. 국내 시장에서 압도적 점유율을 확보한 브랜드인 현대자동차의 코나 일렉트릭, 가장 최근에 출시됐고 강력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미니(MINI) 컨트리맨과 에이스맨, 중국 기업의 첫 한국 전기 승용차 시장 진출로 관심을 모은 BYD(비야디) 아토3가 대상이다.
신형 코나 일렉트릭이 출시된 건 2년 전이다. 세 차량 중 가장 오래됐지만 제일 미래적인 외관을 지녔다. 전면 하단에 수십 개의 픽셀을 배치했고 현대차 디자인의 새로운 유전자(DNA)로 자리잡은 수평형 LED 램프를 채택했다. 색상에도 차별화를 두려고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시승차는 검정색이었지만 홈페이지나 카탈로그 등엔 카키색이나 형광빛이 도는 연두색 계통을 전면에 내세운다. 반면 내부는 내연기관차의 감성이 가장 많이 묻어 있었다. 대부분 기능을 디스플레이에 담는 요즘 추세와는 다르게 물리버튼을 잔뜩 배치했다.

먼저 뒷좌석에 앉았다. 바닥을 평평하게 만든 덕에 소형 차급치곤 공간이 넉넉했다. 2열 좌석을 완전히 접을 수 있어 ‘차박’(차량에서 숙박)도 가능하다. 앞좌석도 변속기를 운전대(스티어링휠) 뒤쪽에 달아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 공간을 확보했다. 지난 7일 이 차를 타고 서울 구로에서 충남 당진까지 왕복 약 150㎞를 주행했다. 페달을 밟는 만큼 부드럽게 가속이 붙었다. 최고 출력 204마력, 최대 토크 40.3㎏·m의 성능을 갖췄다. 전기차 특유의 울컥거림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특별히 세게 과속방지턱을 넘은 게 아닌데 덜컹거림이 심했다.
미니가 한국에 전기차 3종을 동시에 출격시킨 지난 13일엔 ‘미니 컨트리맨’과 ‘미니 에이스맨’을 시승했다. 인천 중구 BMW드라이빙센터에서 경기도 김포의 한 카페까지 왕복 약 100㎞를 갈 때는 컨트리맨을, 올 때는 에이스맨을 몰았다. 컨트리맨은 ‘시골 남자’(countryman)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도시적인 차였다. 전동화로 전환하면서 더 세련된 모습으로 돌아왔다. 돌출돼 있던 손잡이를 문 안에 넣어(플러시 도어 핸들) 매끈한 옆태를 구현했다. 공기 저항을 줄이는 효과는 덤이다. 지붕에 있던 안테나를 떼어내 군더더기를 없앴다. 둥그스름했던 LED 헤드램프를 각지게 디자인했다.

통상적인 자동차는 문 안쪽 면이나 대시보드 등이 플라스틱으로 돼있는데 이 차는 니트 재질이었다. 100% 재활용 폴리에스테르를 사용했다고 한다. 포근한 느낌을 줬다. 운전석에 앉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큼지막한 원형 디스플레이다. 계기판이 따로 없고 속도, 주행거리, 온도, 내비게이션 등 모든 정보를 원형 디스플레이에 담았는데 전혀 조잡하지 않았다.
이날 인천은 100m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안개가 자욱했다. 영종대교에 진입하자 다리에 설치된 확성기에서 ‘안개발생 감속운행’이라는 경고음이 반복해서 나왔다. 시속 50㎞ 아래로 속도를 늦췄다. 운전대(스티어링휠)에서 손을 뗐다. 자동차가 차선을 벗어나려고 하면 운전대가 부르르 떨며 타이어를 차선 안쪽으로 갖다 놓았다.
주행모드를 ‘고 카트’(GO-KART)로 전환했다. “유~후!”라는 소리와 함께 디스플레이 디자인이 싹 바뀌었다.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았다. 가상의 배기음을 내뱉으며 계기판 속도가 신속하게 올라갔다. 등이 운전석 등받이에 턱 달라붙을 정도로 차가 순간적으로 빠르게 치고 나갔다. 이 차의 공식 제로백(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5.6초지만 체감은 더 빨랐다. 울퉁불퉁한 노면을 지날 때도 서스펜션이 충격을 충분히 흡수한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을 때도 묵직한 안정감이 잘 전달됐다. 다만 전기차가 회생제동(감속시 남은 에너지를 저장하는 기능)을 할 때 뒷덜미를 살짝 잡아당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에이스맨은 컨트리맨보다 몸집이 약간 작을 뿐 내·외부 디자인에서 큰 차이는 없었다. 최고출력 218마력, 최대토크 33.7kg·m의 성능을 갖췄다. 컨트리맨보다 출력은 다소 낮지만 민첩한 핸들링과 경쾌한 가속 반응이 돋보였다.
앞서 지난달 15일엔 아토3를 타고 서울 시내에서 충남 서산까지 왕복 약 260㎞를 주행했다. 외관 디자인은 무난한 편이다. 전체적으로 매끄럽고 유려하게 빠졌다. 폭스바겐그룹에서 영입한 볼프강 에거 디렉터가 디자인했다. 다만 실내는 독특한 디자인이 곳곳에 눈에 띈다. 문을 여닫는 레버가 스피커 위에 덮개처럼 달려있다. 문 아래쪽 수납공간에 연결해 놓은 3개의 고무줄은 기타 줄을 연상시킨다.
시동을 켜자 중앙에 위치한 12.8인치 디스플레이가 오른쪽으로 90도 돌아가면서 세로 형태로 섰다. 디스플레이가 세로로 세워져 있으니 가로로 긴 형태보다 내비게이션 보기가 더 편했다.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떼자 차가 부드럽게 전진했다. 도심뿐만 아니라 시골 흙길을 달릴 때도 덜컹거림이 크지 않았다. 주행을 마치자 81%에서 시작한 배터리 잔량은 11% 남아있었다. 환경부 인증 기준 최대 주행거리는 321㎞다. BYD는 아토3에 회사가 직접 개발한 리튬인산철(LFP) 블레이드 배터리를 탑재했다.
5인치 크기의 작은 계기판은 디자인 측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세 차량 중 유일하게 헤드업디스플레이(HUD)가 없다. 중국 브랜드여서 그런지 아토3에 탑재된 음성인식 기능은 내비게이션과 연동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주행성능 측면에선 만족스러웠다. 코나 일렉트릭과 미니의 전기차가 보급형치곤 가격대가 부담스럽다는 점을 고려하면 2000만원 후반대 실구매가 가능한 아토3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전기차 구매를 고민하는 소비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가 주행거리다. 전기차 주행거리는 기온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차량마다 시승한 날의 온도 차이가 커서 단순비교를 할 수는 없었다. 공식 최대 주행 가능 거리는 코나 일렉트릭이 417㎞(롱레인지 기준)로 가장 길었다. 이어 컨트리맨(349㎞), 아토3(321㎞), 에이스맨(312㎞) 순이다. 편안한 승차감과 긴 주행거리 등 실용적인 측면을 중시한다면 코나 일렉트릭을, 경쾌한 주행감과 세련된 디자인을 선호하면 미니 컨트리맨이나 에이스맨을, 가성비 있는 전기차를 몰고 싶다면 아토3가 제격이다.
소형 전기 SUV 차량 4종을 잇달아 타고 난 뒤 확실히 느낀 게 있다면, 역시 주차는 소형차가 압도적으로 편하다는 거다.
글·사진=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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