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유족이 상속받은 재산만큼 세금을 내는 ‘유산취득세’ 방식을 2028년부터 시행하겠다고 12일 발표했다. 전체 상속 재산을 기준으로 상속인이 다 같이 세금을 내는 ‘유산세’ 방식에서 각자 물려받은 재산에만 세금을 매기는 유산취득세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유산취득세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 1950년 이후 75년 만에 상속세법의 대원칙이 바뀐다. 기획재정부는 “유족이 각자 상속받은 재산만큼 상속세를 내게 돼 세금 부담이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상속세 개편 방안은 자녀 및 배우자 공제를 늘리는 것이 핵심이다. 먼저 자녀 공제를 현행 5000만원에서 5억원으로 늘린다. 상속 자녀 수가 많을수록 세금 공제 규모가 더욱 늘어나도록 했다. 배우자 공제(최저 5억원)는 법정 상속분을 초과한 경우에도 최저 10억원까지 적용한다. 민법상 법정 상속분은 배우자가 1.5, 자녀 1인당 1의 비율이다.
배우자 공제 최대한도(법정상속분 내 30억원)는 그대로 유지되고, 기존 일괄공제(5억원)와 기초공제(2억원)는 모두 인적 공제로 흡수된다. 정정훈 기재부 세제실장은 “상속받는 자녀가 많을수록 전체 공제액은 늘어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현재는 유산 20억원을 배우자가 10억원, 자녀 2명이 5억원씩 나누면 총 1억3200만원을 상속세로 내야 한다.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새 공제 기준을 적용하면 상속세는 없다. 배우자가 10억원, 자녀가 5억원씩 모두 공제를 받아 세금이 발생하지 않는다. 유산 15억원을 자녀 3명이 5억원씩 상속받는 경우에도 지금은 2억4000만원을 상속세로 내야 하지만 개편안에선 15억원이 모두 공제돼 상속세가 없다.
정부는 유산취득세 도입 후에도 현행대로 최소 10억원까진 인적 공제를 받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지금은 배우자가 상속받는 금액이 없어도 5억원을 기본으로 공제했다. 반면 바뀌는 유산취득세 방식에선 10억원을 자녀 1명이 혼자 상속받을 경우 자녀 공제 5억원만 적용된다. 이에 미달액(5억원)만큼 추가 공제를 제공해 현행 10억원의 면세점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유산취득세 전환으로 상속세수가 2조원가량 줄어들 것으로 추산한다. 자녀 공제가 커지고 개별 상속인의 과세표준이 낮아지면서다. 2023년 기준 상속세수는 총 8조5400억원, 과세자 비율은 6.8%였다. 정 실장은 “유산취득세로 전환 시 과세자 비율도 절반 정도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오는 5월 유산취득세 개편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2028년부터 시행에 들어갈 계획이다. 현재 여야가 합의한 ‘배우자 상속세 폐지’ 방안도 법 개정이 먼저 진행된다면 이를 유산취득세 법안에 그대로 담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유산취득세 법안의 심의 과정은 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지난해 정부는 자녀 공제를 5억원으로 확대하는 상속세 개정을 추진했지만, 야당의 최고세율 인하 반대 등에 맞물려 무산됐다. 정부 발표 직후 더불어민주당에선 “부자 감세”라는 비판이 나왔다. 민주당 임광현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상속 재산 50억원 이하인 배우자와 1자녀는 유산취득세 도입에 따른 혜택이 없다”고 반발했다. 같은 당 안도걸 의원도 “큰 폭의 세수 감소를 수반하는 유산취득세 개편 발표는 무책임한 재정 운용”이라고 했다.
세종=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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