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석방 이튿날인 지난 9일 한남동 관저에서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를 만나 “앞으로도 우리 당을 지도부가 잘 이끌어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석방된 윤 대통령의 향후 행보에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된 상황에서 성사된 면담은 여러 해석을 낳았다.
다만 여권 내부에서는 윤 대통령의 ‘관저 정치’가 재개되고 있다는 평가를 경계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동시에 여당 지도부가 윤 대통령과의 거리 설정을 두고 딜레마에 놓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밀착하면 중도층 여론 악화, 지나치게 거리를 두면 보수층 반발 심화라는 난감한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권 비대위원장은 10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이 구금돼 있다가 나온 지 하루이틀밖에 안 된 상황이니까 긴 이야기는 안 했다”며 “(지도부는) 건강과 관련된 안부를 물었고, (윤 대통령은) ‘앞으로 잘해달라’는 이야기와 구치소에 있으면서 느낀 여러 가지 소회를 이야기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또 권 위원장과 권 원내대표에게 “당을 잘 운영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고 신동욱 수석대변인이 전했다. 면담은 전날 오후 8시부터 약 30분 동안 진행됐다. 김건희 여사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번 방문에 대한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권 위원장은 ‘당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구체적 얘기가 없었느냐’는 질문에 “그런 얘기는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대통령과 선을 긋지 못한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당 지도부가 (석방된 대통령을) 인사 가는 건 당연한 것”이라며 “선을 긋고 안 긋고로 해석하는 건 동의하지 않고 옳지도 않다”고 일축했다. 윤 대통령과의 추가 면담 여부에는 “서로 못 만날 이유는 없다”면서도 “현재로서 생각한 건 없다”고 답했다.
이는 탄핵심판 선고를 앞둔 윤 대통령의 메시지가 주목받으면서 정국에 파장을 미칠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한 친윤(친윤석열)계 핵심 인사는 통화에서 “윤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가 정국 구상을 하기에 30분은 극히 짧은 시간”이라고 말했다. 이어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올 때까지는 최대한 말이 나오지 않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여당 지도부 관계자는 “대통령과의 거리를 인위적으로 가깝게 하거나 멀게 하지 않겠다는 게 지도부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여당 의원들의 개별적 행동은 존중하되 지도부는 흔들리지 않고 순리대로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 석방 이후 국민의힘 지도부가 운신할 폭이 오히려 좁아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중도층에서는 대통령이 잘못했다는 여론이 굳어지고 있다”며 “거기에다 윤 대통령 석방으로 여권 일부에서 탄핵 기각·각하 목소리가 커지고 강경파까지 득세하면 지도부가 무슨 수를 쓰든 여론을 뒤집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구자창 이강민 기자 critic@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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