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150여명의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가 내놓은 ‘저비용 고성능’ 생성형 인공지능(AI) 모델이 세계를 놀라게 하면서 중국의 AI 투자에 가속력이 붙었다. 딥시크는 지난 24일부터 소스 코드를 일부 공개하면서 자사의 기술력이 거품이 아님을 입증해 보였다. 2030년까지 AI 주도권을 확보한다는 중국의 ‘AI 굴기’가 정치적 선전 구호가 아닌 실현 가능한 목표로 떠올랐다.
정부·기업 손잡고 막대한 투자
중국의 빅테크 알리바바는 지난 24일 클라우드와 AI 분야에 3년간 3800억 위안(약 75조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중국 민영 기업의 관련 투자 중 역대 최대 규모로, 알리바바가 지난 10년간 이 분야에 투자한 것보다 많다.
틱톡의 모기업인 중국 바이트댄스는 올해 AI에 17조원 이상을 투자하기로 했다. 지난해 상반기에만 4조5000억원을 AI 인프라 구축에 투입한 인터넷기업 텐센트는 올해 투자 규모를 더 확대할 방침이다.
중국 최대 포털 바이두도 올 하반기 차세대 AI 모델을 출시한다는 목표 아래 공격적인 투자에 나섰다. 바이두 최고경영자(CEO) 리옌훙은 지난달 두바이에서 열린 ‘세계정부정상회의’에서 “기술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발전할 때는 투자를 멈출 수 없다”며 대규모 AI 투자를 약속했다.
중국이 향후 6년간 AI에 2000조원에 가까운 투자를 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국제금융공사(CICC)의 첸리앙 회장은 최근 포럼에서 “중국 AI산업은 앞으로 6년간 10조 위안(약 1983조원) 이상을 기술 개발에 투자할 수 있다”며 “2030년까지 중국 AI 시장 규모는 5조6000억 위안(1110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정부도 올해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예산을 지난해보다 10%가량 늘려 800조원으로 책정할 가능성이 크다. 골드만삭스는 AI 열풍으로 중국 증시에 2000억 달러(288조원)의 자금이 추가 유입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기술력에선 미·중 2강 구도
중국이 AI의 위력을 각성한 것은 2017년 5월이었다. 구글의 알파고가 바둑 천재 커제 9단을 이기는 모습에 큰 충격을 받고 2030년까지 AI 선도국가가 되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세웠다.
2022년 빅테크가 아닌 오픈AI가 챗GPT를 내놓은 뒤에는 민간 스타트업 육성에도 눈을 돌렸다. 중국 교육부는 2018년부터 AI학과 신설을 장려해 지금까지 전국 대학에 530개 이상의 학과가 새로 설치됐다. 중국에선 매년 배출되는 대졸 AI 전공자만 4만명이 넘는다. AI 관련 학과 졸업생은 별도다. 지방정부는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하며 인재를 유치하고 스타트업을 육성했다.
현재 중국의 AI 기술력은 미국에 이은 2위다. 중국과학기술정보연구소와 베이징대가 공동개발한 2023년 글로벌 AI 혁신지수에서 중국은 미국에 이은 2위에 올랐다. 미국 스탠퍼드대가 지난해 발표한 글로벌 AI 활력도 순위에서도 미국이 1위, 중국이 2위를 차지했다.
일본 닛케이 분석에 따르면 세계 3대 AI 학회에 채택된 논문 중 등재 저자 수가 많은 상위 10개 기관 목록에서도 중국은 미국(6곳) 다음으로 많은 4곳을 올렸다. 특허에선 이미 1위다. 세계지식재산기구(WIPO)에 따르면 2014년부터 10년간 출원된 생성형 AI 관련 특허 5만4000여건 가운데 중국이 출원한 특허가 3만8210건으로 약 70%를 차지했다. 전체적으로는 미국과 격차가 있기는 하지만 두 나라와 3위 이하의 격차가 상당히 커 사실상 양강구도다.
중국에는 딥시크 외에도 5000개에 육박하는 AI 기업이 있다. 이 중 생성형 AI를 연구하는 기업만 700개가 넘는다. 상용화된 대규모 AI 모델만 해도 커다쉰페이의 싱훠, 바이두의 원신이옌 4.0, 알리바바의 통이첸원 2.0, 비보의 란신, 문샷AI의 키미 등 10개에 육박한다.
‘AI가 세계를 바꾼다’
중국이 기술 굴기의 핵심으로 AI를 지목한 배경에는 AI가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며 세계를 바꿀 것이라는 확고한 비전이 있다.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은 최근 온라인 특강에서 “앞으로 10년간 일어날 변화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며 “AI가 세계를 재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지난 연말 행사에서도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앞으로 20년간 AI가 가져올 변화는 모든 사람의 상상을 뛰어넘을 것이다. AI가 위대한 시대를 열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에 불어닥친 딥시크 열풍은 이런 변화를 앞당길 것으로 기대된다. 딥시크가 가져온 전 국민, 전 산업의 ‘AI 계몽 효과’가 갖는 가치는 계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딥시크는 출시 한 달 만에 누적 다운로드 1억건을 돌파했고, 덩달아 중국의 다른 AI 모델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일반인들은 AI를 통해 과제나 업무 처리에 도움을 받는 데서 나아가 심리·건강·진로 등 개인적인 문제까지 상담한다. 정부는 AI 공무원을 채용해 공공서비스에 활용하고 영세기업이나 농촌에서도 AI 접목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AI로 국가 전체의 생산성이 높아지고 이렇게 쌓인 데이터가 AI를 더 고도화하는 선순환 고리의 초입부에 진입한 셈이다.
베이징=송세영 특파원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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