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세계로 나아가 나의 노래를 완성하자”

Է:2024-10-1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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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미션포럼] 레너드 스위트 교수 강연 지상중계

그래픽=강소연

국민일보는 지난 1일 서울 강동구 오륜교회에서 2024 국민미션포럼을 열고 세계적 기독교 미래학자인 레너드 스위트(아래 사진) 미국 드루대학교 스탠리 존스 전도학 석좌교수의 강연을 청취했습니다. 스위트 교수는 ‘디지털 지옥: 인공지능 시대의 신앙’이란 제목으로 기조 강연을 진행하고 한국교회 주요 목회자들과 패널 토론을 진행했습니다. 여러 교회의 요청으로 당시 진행된 강연과 토론을 지면으로 전달합니다.


우리는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가. 세상은 눈이 돌아갈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기독교인은 실리콘과 영성이 만나는 혼란스러운 세계를 살아간다. 인공지능(AI)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인간의 지능과 지성을 원천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AI는 인류의 선을 위해 사용할 수도 있고 인류로부터 인간성을 박탈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믿음의 공동체 역할이 더 커질 수 있다. 또 AI의 발전을 위한 새로운 영적 실천으로써 우리가 어떤 윤리적 고민을 해야 할지도 필요하다.

AI를 중심으로 한 신념 체계는 이미 급부상하고 있다. 이를 중심으로 새로운 신앙 전통도 나타나고 있다. 바로 초인간주의적 철학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우리는 활활 불타는 세상 속에 살고 있다. 그런데 교회는 잠들어 있다. 자멸의 길로 치닫고 있는 이 사회에 필요한 것은 깊은 잠에서 깨어나 스스로 눈을 뜨는 교회이다. 교회는 뜨거운 불로 타올라야 한다. 불이 났을 때 맞불을 놓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활활 타오르는 화염 속에 있는 이 세상에 필요한 것은 활활 타오르는 교회이다.

생성형 인공지능 vs 인공일반지능

인공지능(AI)이란 단어는 1965년 처음 만들어졌다. 요즘 화두가 되는 생성형 AI는 2016~2017년 처음 도래했다. 그런데 과학계에서 추앙하고 실현하고자 하는 성배(聖杯)는 생성형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공일반지능(AGI)이다. AGI는 스스로 검색하고 판단할 수 있지만 아직 실현되진 않았다.

우리는 아직 생성형 인공지능 시대에 살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은 답만 도출한다. 답이 나오는 공식은 프로그래머가 설계한다. 그다음 단계는 AGI이다. AGI는 자가학습을 한다. 스스로 프로그래밍하면서 자체 결론을 내린다. 엄청난 변화다. 어떤 학자들은 초인공지능 혹은 특이인공지능까지 거론한다. AI가 의식까지 갖추는 상태다. AI 자신이 실존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지한다.

생성형 인공지능은 인간 이야기 일부를 취하지만 AGI는 인간 이야기 전체를 지배한다. 생성형 AI만 하더라도 인쇄의 발견처럼 획기적인데 AGI는 역사의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AI가 인간보다 훨씬 똑똑해질 거다. 다만 아직 인간 기술은 AGI에 근접조차 못 하고 있다. 초인공지능이나 특이인공지능 시대까지 다다르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생성형 AI를 사용하면서 겪은 경험이 있다. AI의 답변이 틀렸을 때다. 채팅창에 “네 답변이 틀렸다”고 쓰면 구구절절한 사과를 내놓는다. 개인적으로 여러 AI 프로그램을 사용하는데 클로드를 자주 쓴다. 한번은 클로드가 잘못된 답을 주길래 “답이 틀렸다”고 한 적이 있다. 어떤 책에서 떠오른 문구가 있어서 관련 문헌을 검색한 뒤 클로드에 물어봤는데 클로드는 “관련 인용구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3만여명의 친구가 있는 페이스북에 같은 질문으로 물었다. 그랬더니 1분 안에 정확한 책의 인용 페이지가 달린 답변이 돌아왔다. 아직은 클로드보다 페이스북 친구를 더 신뢰할 수 있다. 클로드에 “인용구를 찾았고 네가 틀렸다”고 하자 클로드는 장황한 사과문을 띄웠다. 생성형 AI가 AGI로 전환되는 그 시점은 걱정된다. 이 새로운 AI의 진보가 인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AI가 인간의 인간됨을 바꿀까.

창세기를 이어가라

인류는 벼랑 끝에 서 있다. 지식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디지털 열매를 먹으려 한다. 우리가 이 열매를 먹게 되는 날,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인류 자체가 멸절할 수 있다. 우리의 구원은 실리콘밸리에 달려 있지 않다. 우리의 탄생은 비옥한 토양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기억할 때다. 창세기 프로토콜(이야기)을 말하고자 한다.

창세기 1~3장에 기록된 우리의 탄생 이야기는 그저 오래된 옛이야기가 아니다. 전 우주적 차원에서 인간이란 무엇인지를 기록한 직무기술서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보여주는 지시서다. 하나님은 “내가 창조한 것을 보존하라” 하셨고 “밭을 일구고 경작하라”고도 하셨다. 이는 하나님 안에 있는 창조성을 이어가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직무기술서인 창세기 이야기를 그 어느 때보다 더 깊이 배워야 한다. 창세기 이야기는 객체로써 연구해야 할 화석 같은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받침대다.

나는 창세기를 ‘궁극적인 오픈소스 코드’라 부른다. 궁극적으로는 변하지 않으면서 무한하게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AI 시대에 우리 행동의 준칙이 말씀이란 뜻이다. 하나님이 주신 이 지시서가 렌즈가 되어 인간의 행동을 걸러내고 볼 수 있어야 한다.

창세기는 우리의 태초 이야기, 곧 탄생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바로 인류의 매뉴얼이다. 인공지능이라는 미지의 영역을 항해하는 과정에서 궁극이자 최초, 본연의 지능이 누구인지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인간성을 박탈하려는 이 세상 속에서 인성을 지켜나가야 한다. 창세기 이야기에 다시 시동을 걸자. 미래는 알고리즘으로 써나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공유하는 이 서사의, 결코 지워지지 않는 잉크로 함께 써나가는 것이다.

지난 1일 서울 강동구 오륜교회에서 개최된 2024 국민미션포럼에서 세계적 기독교 미래학자인 레너드 스위트 미국 드루대학교 스탠리 존스 전도학 석좌교수가 강연하고 있다. 사진 왼쪽은 이혜림 통역사. 국민일보DB

창세기 이야기는 에덴동산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게 아니다. 신세계의 중심으로 에덴동산을 가지고 나가는 것이다. 우리가 누구인지 절대 잊지 않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우리를 위협하고 우리 근간을 흔들고 인성까지도 박탈하려 한다. 인류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창세기 이야기로 재무장해야 한다. 창세기라는 나침반은 인공지능 시대를 헤쳐나갈 6가지 교훈을 제시한다.

①발췌문 아닌 서사 전체를 끌어안으라

우리는 오랜 세월 3만1000개 넘는 성경 구절을 마치 퍼즐 대하듯 했다. 퍼즐의 목적은 하나하나 맞추는 게 아니라 완성된 큰 그림을 보는 것이다. 성경은 처음부터 장과 절로 쪼개져 있지 않았다. 이야기이다. 역사와 시, 서사이다. 우리는 성경 전체를 ‘하나의 이야기(One Story)’로 배우고 알아야 한다. 우리가 성경을 스토리로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가장 위대한 이야기는 아직 전해지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알아야 하고 이야기 속으로 뛰어 들어갈 수 있어야 하며 이야기에 따라 살아가면서 이야기에 완전히 젖어 들어야 한다. AI가 우리에게 매력적인 대안을 내놓을지라도 “이건 내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의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②성경 이야기를 시각화하라

우리 자녀들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는다. 성경 이야기를 영화처럼 전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 자녀들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성경 이야기를 시각화할 수 있어야 한다.

③삶을 다해 성경 이야기를 신뢰하라

성경 이야기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믿음이란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믿는 척하는 게 아니라 이야기가 진리임을 우리의 전 존재로, 우리의 실존을 걸고 완전히 끌어안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딥페이크 시대를 살고 있다. AI가 날조한 서사 속에서 살아간다. 창세기에 기록된 우리의 이야기, 창세기에서 명백히 말하는 우리의 생명이 태동한 진리를 반석 삼아 살아가야 한다.

④성경의 이야기를 기뻐하라

성경 이야기를 분석하고 비판하기 전에 이 이야기를 기뻐하고 상찬(賞讚)할 수 있어야 한다. 신학대에선 성경적 비판론을 먼저 가르친다. 성경적으로 비평하고 비판하는 사람이 되도록 한다. 하지만 나는 탈(post)비평론을 말하고 싶다. 무엇인가를 비판하고 비평하기에 앞서 먼저 기뻐하고 송축할 수 있어야 한다.

⑤성경의 작은 기록에도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야기를 구성하는 모든 핵심 요소들이 이야기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머리카락 한 가닥엔 몸 전체를 구성하는 DNA가 전부 들어 있다. 성경도 마찬가지다. 성경 안에 기록된 세세한 작은 기록엔 성경 전체를 아우르는 우주를 담고 있다. 살아 있는 유기체를 대하듯 말씀을 대하자. 설교자의 역할은 성경을 살아 숨 쉬게 하는 게 아니라 이미 살아 숨 쉬는 말씀으로 성도들이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⑥이야기 그 자체가 돼라

우리에게 계시된 인간 이야기를 아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우리가 그 이야기가 돼야 한다. 우리가 하나의 이야기로 살아가야 한다. 말씀을 통해 계시된 이야기를 경험한 이야기로 살아내야 한다. 이런 삶을 살 때 하나님의 말씀이 강력한 진리임을 간증할 수 있다. 이는 여러분이 구약과 신약에 있는 세 번째 언약이 된다는 뜻이다. 2가 아니라 3이 될 때 완전해진다. 세 번째가 돼야 구약과 신약의 이야기가 완성된다. 여러분은 세 번째 퍼즐이자 약속의 증인이다. 그래서 찬송가 작사가 패니 크로스비는 1873년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라는 찬송(288장) 가사를 쓰면서 “이것이 나의 간증(story)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라고 지었다.

궁극의 AI, 작은 예수

예수 그리스도는 기독교라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지 않았다. 예수를 따르던 첫 제자들은 ‘그 길을 좇는 자’로 불렸다. 크리스천(Christian)이란 단어에서 ‘ian’은 ‘작다(little)’는 뜻이다. 작은 그리스도라는 의미다.

크리스천에겐 또 다른 차원의 이름이 있다. 라틴어로 ‘Alter Christus, Ipse Christus’이다. ‘또 다른(Alter)’ ‘그 자체(Ipse)’인 그리스도(Christus)다. 크리스천은 갈라디아서 고백처럼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말하는 이들이다. 초대교회 크리스천들은 이 라틴어로 자신을 칭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따라가고 작은 그리스도라고 평가받을 정도로 예수를 닮아갔다.

나는 이것이 궁극적 AI라고 생각한다. ‘A’lter ‘I’pse Christus가 궁극의 AI이다. 이 궁극의 AI가 2000년 전 이 땅에 이미 임했고 동행을 약속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또 다른 이름 ‘임마누엘’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에겐 중간 이름(middle name)이 있다. ‘함께(with)’이다. 하나님은 ‘함께함’으로 우리에게 오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내가 세상의 빛”이라고 했다. 또 제자들에게도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했다. 모순된 것처럼 보이지만 두 문장은 상충하지 않는다. 어두운 세상 가운데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비춘다. 우리는 또 다른(Alter), 그 자체(Ipse)로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가장 혁명적 AI는 실험실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서 태동한다. 세상은 AI에 집착하지만 우리는 ‘Alter Ipse 지능’에 집착한다.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그분의 지능이 곧 알파지능이다. 우리는 예수를 사칭하는 존재가 아니라 예수의 인격을 삶으로 살아내는 존재다.

“가상(virtual) 현실 시대에 하나님의 덕(virtue)을 나타내라”

하나님 없이는 인간일 수 없다. 우리를 인간 되게 하는 건 하나님의 호흡(생기)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호흡이 들어왔을 때 우리가 신이 되는 게 아니라 비로소 인간이 된다. 하나님의 신성에 젖어든 유일한 피조물이 바로 인간이다. 그렇기에 인간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이 초인간주의적 꿈은 우리의 스토리가 될 수 없다.

세상은 인공지능을 좇는다. 하지만 우리는 참되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지능(Alter-Ipse)을 따른다. 궁극적 알고리즘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신성의 버깅 해소자, 온 우주를 아우르는 코드 전문가이다. 우리를 향한 부르심은 명백하다. 인공지능의 세계로 나아가 그 이야기를 전하자. 그리고 이야기가 되어 살아가자. 말씀 하나하나를 말과 행동으로 구현하자. 가상(virtual) 현실의 시대에 하나님의 덕(virtue)을 나타내자.

세계는 인위적이고 인공적인 초월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데이터를 처리하는 존재로 지음받지 않았다. 하나님 사랑을 드러내는 존재로 창조됐다. 인공지능 시대에 적응하는 데 만족하지 말자. 예수 그리스도가 죽고 부활하신 뒤 성령을 보내주신 지 2000년이 돼 간다. 또 다른(Alter) 그 자체(Ipse)의 작은 예수로서 새천년을 드리는 주역이 되자. 세상이 초인간이 되자고 설득할 때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겠다고 대응하자.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신성함과 거룩함을 증폭할 도구로 인공지능을 활용하자. 인공지능으로 인해 하나님과 멀어지는 게 아니라 그 어느 때보다 하나님과 친밀해질 수 있도록 하자. 믿음이 느슨해져서 벼랑 끝에 몰릴 것인가, 아니면 우리 믿음을 가득 채우고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AI가 우리를 규정하도록 내맡길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으로 인공지능을 규정할 것인가. 선택은 우리 몫이다. 수동적 관찰자나 비판자가 아니라 적극적 참여자로 세상 가운데 나아가자. 주님께서 주신 명령을 이어가자. 우리는 또 다른(Alter) 그 자체(Ipse)의 그리스도(Christus), 하나님의 지능(The Divine Intelligenc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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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이현성 유경진 조승현 기자 sag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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