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꼬깃꼬깃 접어둔 가사 한 조각

Է:2024-10-11 00:34
ϱ
ũ

김윤하(대중음악평론가)


흥얼대던 멜로디서 마음 속
이야기 찾아… 누구나 인생
대변할 노랫말 하나 있을 것

나의 업은 세상에 존재하는 혹은 존재했던 모든 대중음악을 말과 글로 푸는 일이다. 보는 이들의 쉬운 이해를 위해 대중음악평론가라는 이름표를 달고 활동하지만, 이름표는 이름표에 불과할 뿐. 대중음악의 영역은 너무나 넓고 깊어 같은 이름표를 단 사람이라도 담당 구역이 정확히 겹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나는 그 가운데에서도 한국 대중음악, 특히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음악에 관심과 애정을 쏟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에서 날고 긴다는 어떤 평론가, 어떤 칼럼니스트, 어떤 인플루언서가 와도 이 분야에 있어서는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나의 시대, 나의 언어로 노래하는 사람들의 음악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대중음악의 노랫말은 내가 평론가로서 가장 큰 메리트를 느끼는 일이다. 단어가 가진 고유한 뜻풀이만이 아닌 단어와 단어의 연결, 접속어와 조사 사용법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뉘앙스를 기어코 찾아내는 건 아무리 해도 질리지 않는 일이다. 특히 그 특이점이 내가 사는 ‘지금’과 절묘하게 조응할 때, 누구라도 붙잡고 지금의 이 발견을 나누고 싶어 손끝과 입술이 근질거린다. 덕분에 종종 칼럼을 두고 ‘이게 음악 평론인지 문학 평론인지 모르겠다’는 쓴소리를 듣는 경우도 생기지만, 그런 세모눈쯤은 거뜬히 이겨낼 수 있을 정도로 즐겁다. 몇 번을 반복해도 짜릿한 경험이다.

실제로 노랫말은 해당 노래, 나아가 그 노래를 부른 음악가를 사랑하게 하는 데 가장 큰 힘을 가진 존재다. ‘좋다’가 아닌 ‘사랑’이다. 익숙하게 흥얼대던 멜로디에 실린 노랫말이 내 심장에서 꺼낸 듯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걸 깨달을 때, 내 일기장을 노랫말로 바꿔 불러주는 듯한 음악가를 우연히 만났을 때, 사람들은 그들과 금세 사랑에 빠진다. ‘인생 노래’나 ‘인생 음악가’라는 트로피를 쥐어주고 그들을 기꺼이 자신의 삶으로 들여놓는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쯤 자신의 인생을 대변해 주는, 마음에 부적처럼 품고 사는 노랫말을 가지고 있다.

순간 문득 떠오른 가사가 있다. “안돼요,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순 없어요.” 이달 초 ‘우리는 모두 실패할 것을 알고 있어요’라는 제목의 정규 4집을 발표한 밴드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 ‘앵콜요청금지’다. 이 노랫말은 한겨울 입김처럼 하얗게 부서지는 한숨과 함께 노래를 여는 주문이다. 거두절미하고 ‘안된다’는 거절부터 던져버리는 패기에 보잘것없던 지난 사랑의 타고 남은 흔적들이 번번이 새롭게 떠오른다. 2008년 충격의 데뷔작 ‘201’로 한국 대중음악계를 들썩이게 한 밴드 검정치마의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 거야(Antifreeze)’는 또 어떤가. 폐 속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눈보라 속에서도 저 노랫말 한 줄이면 절대 얼어붙지 않을 거라 믿게 만든 마법의 주문이었다.

노랫말은 그 노랫말을 품고 사는 사람들과 만나면 더욱 힘이 세진다. 지금보다 훨씬 어린 날, 홍대 곳곳에 위치한 라이브 클럽에서 틈만 나면 ‘도시에서만 살기는 젊음이 아깝잖아’를 외쳤다. 이 노랫말이 담긴 노래 ‘도시생활’을 부른 밴드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멤버를 비롯해 공연장을 채운 동지들이 참 많았다.

이 분야 끝판왕을 찾자면 뭐니뭐니 해도 역시 크라잉넛의 ‘말달리자’를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 인디 1세대로 지금까지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멋진 OG라는 상징성 외에도 ‘닥쳐 닥쳐 닥치고 내말들어’라는 이 곡의 프리코러스는 끓어오르는 이유를 몰라 매번 헤매고 좌절하는 젊음을 앞으로도 영원히 들끓게 할 것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저마다 가슴 한편에 넣어둔 노랫말들이 궁금해진다. 속주머니에서 꺼내든 꼬깃꼬깃한 종이에 적힌 몇 문장만으로 그 사람을 안다는 서툰 착각에 또 쉽게 빠질 것만 같은, 가을이었다.

김윤하(대중음악평론가)

GoodNews paper Ϻ(www.kmib.co.kr), , , AIн ̿
Ŭ! ̳?
Ϻ IJ о
õ
Ϻ 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