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고, 더럽고, 위험하다. ‘도쿄 화장실 프로젝트’는 공중 화장실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이런 편견을 깨기 위해 시작됐다. 2020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일본 도쿄 시내 시부야구에 17개 화장실을 새로 만들었다.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 일본인 수상자 안도 다다오, 이토 도요, 반 시게루, 마키 후미히코 4명을 포함해 16명의 저명한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설계했다.
이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영화 ‘퍼펙트 데이즈’ 때문이다. 독일 명장 빔 벤더스 감독이 연출을, 일본 연기파 배우 야쿠쇼 고지(68)가 주연을 맡았다. 이 영화 속 주인공의 직업은 도쿄 공중 화장실 청소부. 그가 화장실 구석구석을 지독할 정도로 정성껏 청소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보다 보면 예쁘고 독특하고 자연친화적인 화장실에 저절로 눈길이 간다. 사실 이 영화는 도쿄 공중 화장실에 대한 멋진 창작물을 만들어 달라는 일본재단의 의뢰로 만들어졌다. 재단은 다큐멘터리를 요청했지만 현장을 찾은 감독이 극영화로 재구성했다. 거장의 손길이 닿으며 영화에 깊이가 더해졌고, 주연배우는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국내 극장에서도 상영 중인데 중년층을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고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빨강 파랑 알록달록한 투명 화장실은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만 들어가 문을 잠그면 불투명 유리로 바뀐다. 어두운 밤에는 가로등 역할도 한다. 버섯 모양의 공간, 처마를 닮은 타원형 지붕이 인상적인 곳도 있다. 화장실이 예술 작품이 되면서 ‘도쿄 화장실 셔틀 투어’ 상품까지 나왔다. 동·서쪽 코스 2개로 나눠 2~3시간 내내 공중 화장실만 돌아보는데 각각 4950엔(약 4만4000원)이다. 한 외신은 “최근 SNS를 통해 도쿄 화장실 프로젝트를 접한 전 세계 2030세대가 몰려들고 있다”며 “다녀오고 나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 것”이라고 전했다. 화장실이 도시의 품격을 높이는 데 한몫했다. 우리에게도 일부러 찾아가 보고 싶은 화장실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한승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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