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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영국 선거제의 딜레마

고승욱 수석논설위원


영국 하원은 한 표라도 많이 받은 후보가 당선되는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다. 비례대표는 아예 없다. 유럽 대부분 나라가 득표수와 의석수의 격차를 줄이려고 비례대표제를 다양하게 변형시킨 선거제를 채택했지만 의회민주주의 원조를 자처하는 영국만큼은 예외다. 지난주 총선에서는 이 제도의 문제점이 확실하게 드러났다.

보수당에게 190년 만의 최악의 참패를 안기며 단독 과반을 확보한 노동당의 득표율은 33.8%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전체 650석 중 63.4%인 412석을 가져갔다. 득표율과 의석률의 격차가 30% 포인트에 달했다. 반면 보수당은 23.7% 지지를 얻고 121석(18.6%)을 확보했다. 거대 양당 사이에서 분투한 군소정당은 더 억울하다. 극우를 표방한 영국개혁당의 득표율은 14.3%인데 의석수는 5석(0.8%)에 불과했다. 득표율 12.2%인 자유민주당이 72석, 2.5%에 그친 스코틀랜드국민당이 9석을 가져갔으니 표심이 심하게 왜곡된 것이다. 2018년 창당 이후 처음으로 하원에 진입한 영국개혁당은 ‘불공정한 선거제’라는 비난을 쏟아냈다.

영국에서 선거제를 바꾸려는 시도는 여러번 있었다. 하지만 보수당과 노동당은 선거제 개편안을 모두 부결시켰다. 많은 유권자가 안정적인 양당제가 영국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는 이유에서였다. 2011년 노동당 주도로 선거제 개편을 위한 국민투표가 이뤄졌으나 찬성 32%, 반대 68%로 무산됐다.

지금 영국에서는 선거제 개편 주장이 다시 힘을 얻고 있다. 어느 때보다 언론의 관심도 높다. 무능한 보수당에 반대했을 뿐인데 노동당이 혜택을 다 가져가는 건 불합리하다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비례대표제 도입은 더 어려워졌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순수 비례대표제가 실시돼 득표율에 따라 의석이 배분됐다면 우익 극단주의 정당인 영국개혁당이 무려 92석을 차지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좌우 극단주의가 야기하는 정치적 혼란을 최소화한다는 양당제 옹호론이 힘을 얻었다. 영국 정치의 딜레마다.

고승욱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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