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함께하는 설교]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미가 7장 18~20절,
갈라디아서 6장 1~10절,
요한복음 7장 53절~8장 11절


용서라는 말은 때로 많은 오해를 낳습니다. 특히 사회적으로 관심이 높은 사건이라면 용서는 가해자에게 면제 수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얼마 전 미국 브리검영 대학교에서 한국학을 가르친 마크 피터슨 교수의 “한국인은 용서해도 난 용서 못 한다”는 발언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교수가 문제 삼은 것은 ‘책임을 면제해 주는 용서’입니다. 일제가 한국에 했던 만행과 현재까지도 진행되는 행위에 대해 ‘용서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분노와 증오를 계속 품고 복수를 해결책으로 삼는다면 우리는 폭력의 악순환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용서는 분노와 증오에서 벗어나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래서 ‘용서’는 가해자에 대한 책임의 면제가 아니라 피해자의 회복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용서에 관한 말씀입니다. 물론 성경에서 말하는 용서는 하나님의 용서입니다. 미가서는 이러한 근거를 하나님의 ‘선하심’에서 찾고 있습니다. 용서를 받는 대상이 아니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이 용서의 출발점이 됩니다. “허물을 용서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미 7:18)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용서의 특징이 등장합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신다.”(미 7:19)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은 사람보다 근원적인 ‘죄’에 집중하고 죄를 지은 사람에게 그 책임을 묻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죄를 없게 하시는 것’이 용서와 회복에 있어서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율법 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한 여인을 데리고 옵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한 덫에 불과했지만, 예수님은 죄인인 그녀를 바로 잡는 것에 중점을 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너희라고 다 깨끗한 줄 아느냐’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여인을 덫으로 이용해 예수님을 시험하려던 마음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마음인지, 그들의 시선을 돌려 자기 자신을 살피도록 하신 것입니다.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말씀은 바로 잡음의 의미입니다. 이것은 죄인으로 낙인찍는 것이 아니라 죄로부터 구원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는 일입니다. 이제 그녀에게는 죄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며 살아갈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점점 교정보다 격리와 처벌이 강조되고 사형제를 지지하는 분위기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처벌이 아니라 온유한 마음으로 그들을 바로 잡아 그리스도의 법에 합당한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합니다. 갈라디아서 1절과 2절 말씀에는 이러한 원칙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죄지은 사람에 대한 처분에 대해 온유한 마음으로 바로잡으라’ 처벌이 아닌 바로 잡음이 그 핵심입니다.

용서는 책임을 면제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우리가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며 살아가도록 이끌어 줍니다. 우리의 용서 역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과정입니다. 물론 우리 자신의 힘과 의지만으로는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성령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줍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빛 안에서 스스로 살피며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자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황범현 목사(광주 고백교회)

◇광주 고백교회는 광주광역시 남구에 있으며 한국기독교장로회에 소속된 교회입니다. 예전적 예배와 성도중심의 교회운영, 사회에 대한 책임성, 하나님 나라를 향한 사명 중심의 교회입니다.

●이 설교는 장애인을 위해 사회적 기업 ‘샤프에스이’ 소속 지적 장애인 4명이 필자의 원고를 쉽게 고쳐 쓴 것입니다.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국민일보 문서선교 후원
X 페이스북 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