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과 데이터센터 관련 전력 수요가 폭증하면서 국내 전력기기 기업들이 본격적인 호황을 맞을 채비에 착수했다. 특히 AI발 전력난으로 발주가 급증한 ‘초고압 변압기’를 중심으로 증설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그간 전력 업계는 AI 열풍에 따른 ‘슈퍼 사이클’ 전망에도 설비 확충에는 소극적이었다. 2010년대 중동 수요 확대 기대감에 대규모 투자에 나섰다가 쓴맛을 봤던 경험 때문이다. 그러나 북미 지역의 노후 전력망 교체 수요와 AI 열풍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국내 전력기기 3사(HD현대일렉트릭·효성중공업·LS일렉트릭)의 생산·수주 전략도 달라지고 있다. 이들 기업은 이미 2027년까지 초고압 변압기 등 주요 제품의 수주를 끝마치고 2028년 이후 납품 물량을 논의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22일 “AI 및 재생에너지 산업 확대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며 공급자 우위 환경이 조성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송배전을 주력으로 하는 LS일렉트릭은 초고압 변압기 증설을 지난 21일 결정했다. 부산사업장 주변 유휴부지(약 1만 3223㎡)에 803억원을 투자해 현재 연 2000억원 규모인 초고압 변압기 생산량을 내년 10월까지 4000억원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초고압 변압기는 발전소에서 생산된 고압의 전기를 변전소, 공장, 주택 등에 전달하는 과정에서 전압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장치다. 특히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리는 AI용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센터는 전력 과부하를 막기 위해 초고압 변압기가 필수적이다. 산업계 전반에 AI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전력 인프라 시장은 더 커질 전망이다. LS일렉트릭 관계자는 “증설 규모보다 더 많은 수주를 확보한 상태”라며 “폭증하고 있는 해외 초고압 변압기 수요에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세계적 전력 수급난으로 국내 기업의 올 1분기 변압기 수출액은 5억44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81.8% 증가했다. 생산공장 가동률도 HD현대일렉트릭(94.8%), 효성중공업(86.5%), LS일렉트릭(95.6%)이 모두 한계치에 근접했다. 이들 3사의 1분기 설비투자액은 422억3100만원으로, 1년 전(199억1000만원)보다 112.1% 급증했다. 국내 변압기 1위인 HD현대일렉트릭은 수익성 확대를 위한 선별 수주 단계로 진입했다. 신재생에너지 관련 전력 기기 등 고부가가치 분야 수주에 역량을 집중한다는 구상이다.
효성중공업은 북미를 넘어 유럽 중남미 아프리카로 이어지는 수출 시장 다변화에 방점을 찍었다. 또 국내 시장 1위인 에너지저장장치(ESS)와 더불어 종합 전력 솔루션 업체로 도약한다는 계획이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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