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새마을연극은 2024년 관객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1970년대 새마을운동 연극 ‘활화산’
주체적인 정숙 통해 변하는 농촌
원작 충실하되 비트는 연출 선보여
24일~6월 17일 명동예술극장 공연

국립극단이 올해 극작가 차범석 탄생 100주년을 맞아 1974년 초연한 ‘활화산’을 50년 만에 다시 올린다. 올해 국립극단의 최대 규모 작품으로 출연 배우만 18명에 달하는 ‘활화산’은 1970년대 새마을연극 운동의 대표작이다. 국립극단 제공
사실주의 연극은 원래 서양 연극사에서 감상적인 낭만주의 연극에 대한 반동으로 19세기 말부터 성행한 형식으로 일상생활과 평범한 사람들을 다뤘다. 한국에서는 20세기 전반 서양연극을 수용하면서 사실주의 연극이 정극(正劇)으로 자리 잡아갔다. 극작가이자 연출가로도 활동했던 차범석(1924~2006·아래 사진)은 유치진, 이해랑에 이어 한국 사실주의 연극을 확립한 거장이다. 195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밀주’로 입상하며 데뷔한 그는 이듬해 ‘귀향’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극작과 연출에 나섰다. 특히 극작가로서 시대변화와 전쟁으로 인한 가정의 해체, 신구세대의 갈등을 세밀하게 다룬 희곡으로 한국 연극사에 큰 획을 그었다. 평생 64편의 희곡을 발표했으며, ‘불모지’(1957)와 ‘산불’(1962)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올해는 차범석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국립극단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24일부터 6월 17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활화산’을 선보인다. ‘활화산’은 1974년 국립극단에서 제67회 정기공연으로 초연됐던 작품으로, 50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르게 됐다. 올해 국립극단의 최대 규모 작품으로 출연 배우만 18명에 달한다.

국립극단이 1974년 초연한 ‘활화산’ 공연 장면. 박정희정권 지시로 이 공연은 TV로 방영됐으며, 16개 도시 순회공연이 이뤄지기도 했다. 국립극단 제공

‘활화산’은 1960년대 말 경상북도 시골 마을에서 13대째 내려온 이씨 집안의 종가가 배경이다. 주인공 정숙은 부잣집이라는 말에 속아 이씨 집안 아들 상석과 결혼했다. 하지만 이씨 집안은 양반 가문이라는 허울 속에 허례허식과 체면을 중시하다 점점 가세가 기운다. 여기에 일본 유학을 다녀온 상석이 각종 조합장 선거에 나섰다가 매번 낙선하면서 집안은 빚더미에 오른다. 주체적인 정숙은 결국 직접 돼지를 키우는 등 노동을 통해 가난을 극복한다. 정숙 덕분에 상석 등 이씨 집안은 물론 마을 전체가 변화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마을에 필수적인 교량 건설조차도 스스로 해내자는 정숙의 연설에 사람들이 동조하면서 작품의 막이 내린다.

가난 극복 의지, 협동, 자조(自助) 등을 강조한 ‘활화산’은 1970년대 펼쳐진 새마을연극 운동의 대표작이다. 새마을연극은 박정희정권이 추진하던 새마을운동을 선전하고 국민동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고안됐다. 국민에게 ‘잘 살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고 노동을 독려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극’인 것이다. 박정희정권은 예술가들에게 새마을운동 현장을 답사한 뒤 이를 소재로 한 작품을 발표하도록 했다. 당시 연극협회 이사장이었던 차범석은 정부 시책에 적극적으로 호응한 대표적 예술가였다.

‘활화산’은 당시 새마을운동의 모범이 되었던 실존 인물의 활약상을 모티브로 만든 작품이다. 1974년 초연 당시 이해랑이 연출을 맡았으며 백성희, 장민호, 손숙, 신구 등이 출연했다. 국립극장 공연이 끝난 후에는 정부 지시로 텔레비전에서 공연 영상이 방영됐으며 전국 16개 도시에서 순회공연을 하기도 했다. 다만 이 작품은 초연 당시 평단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농촌의 문제들을 열거한 후 주인공에 의해 개연성 없이 개혁되는 과정이 도식적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활화산’을 비롯해 새마을연극은 대부분 관 주도의 관객 동원에도 불구하고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50년 만에 국립극단 무대에 다시 오르는 ‘활화산’은 변화한 시대상에서 만나는 관객에게 새로운 담론과 메시지를 던질 예정이다. ‘활화산’의 연출은 무거운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면서도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을 만들어온 윤한솔이 맡았다. 윤한솔은 원작을 각색과 윤색 없이 충실히 재현하는 동시에 극을 비틀어 보는 다양한 연출 기법과 장치들을 곳곳에 배치해 당시의 시대상이 비추는 함의를 관객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윤한솔은 “시대착오적인 감각들이 객석에서 발동되기를 바란다”라며 “보고 나면 계속 곱씹어 볼 수 있는 의문을 남기고 싶은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연출 소감을 밝혔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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