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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욱 칼럼] 권력을 나누는 것이 헌법 정신이다

입력 : 2024-05-15 00:50/수정 : 2024-05-15 00:52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은
오래된 민주주의 작동 원리

압도적 野大의 22대 국회는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현실

대통령·입법부 권력의 공존
선택할 수밖에 없어
尹, 정면돌파 대신 이 길 가야

권력을 나눠 각각 다른 사람이 행사토록 하는 권력분립은 오래된 생각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권력을 적절하게 견제하지 않으면 어떤 정부도 안정적일 수 없다고 했다. 왕의 권력을 통제하지 못하면 폭정이 시작되고, 귀족정은 소수의 집단이 권력을 독점하는 과두정으로 전락하며 민주정은 우중정치로 타락하는 식이다. 그의 해결책은 소수에 의한 통치와 다수에 의한 통치를 결합하는 혼합정체론이었다.

부유하고 교육받은 귀족들이 통치하지만 다수의 승인을 받도록 해야 권력의 폭주를 막는다는 것이다. 로마 공화정은 이 원리가 작동한 체제다. 원로원, 집정관, 독재관, 호민관, 민회 등 귀족과 평민을 각각 대변하는 기관이 서로를 견제했다.

근대 민주주의 형성과정에서 몽테스키외는 저서 ‘법의 정신’에서 누구에게도 권력이 집중되지 않는 정부 형태를 제시했다. 왕과 싸우면서 자연스럽게 자리잡은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삼권분립이라는 개념으로 정립했다. 이 생각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왕, 귀족, 평민 같은 신분은 사라졌지만 그들이 했던 일을 물려받은 기관이 서로를 견제하는 게 핵심이다. 입법부는 법을 만들지만,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은 거부할 수 있고 사법부는 위헌 여부를 판단한다. 행정부는 법을 집행하지만 입법부는 정부 인사를 승인하고, 예산을 통제하며, 핵심 직책의 탄핵소추권이 있다. 사법부는 행정부 법 집행의 적절성을 판단한다. 법의 해석은 사법부 몫이지만 판사는 대통령이 임명하고 입법부는 그들을 해임토록 한다.

우리 헌법도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충실하다. 권력을 남용하는 독재자의 출현을 막고, 눈앞의 이익에 집착하는 대중들에 의해 민주주의가 타락하지 않을 장치를 곳곳에 담았다. 삼권분립뿐 아니라 행정부나 입법부 안에서도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해 기관끼리 서로 견제토록 했다. 하지만 건국 이래 우리 정치는 이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다. 절대군주의 권한을 조금씩 제한하며 민주주의를 점진적으로 발전시킨 서구와 달리 왕정 몰락과 식민지배 종식으로 갑자기 시스템을 갖게 된 것이 주된 이유다. 대통령은 국회의 견제를 참지 못했고, 늘 사법부 장악을 시도했다. 쿠데타로 집권한 독재자만 그런 게 아니었다. 민주화운동의 결과인 1987년 헌법 체제에서도 대통령들은 헌법 원리를 구현할 생각이 없었다. 인위적 정계개편이나 사정기관을 동원한 의원 빼가기가 횡행했다. 상대를 인정하고 타협에 나서는 순간 배신자나 부역자가 되는 독재시대의 생존법칙이 정치를 지배했다.

지금 우리 정치는 중대한 변화의 기로에 서있다. 수십년 동안 제왕적으로 군림한 대통령 권력과 압도적으로 국회를 장악한 입법부 권력이 정면으로 맞선 상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년 동안 역대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입법부 권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야당과의 타협 대신 대통령의 헌법적 권한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장관 인사청문회의 문턱이 높으니 ‘차관 정치’가, 입법이 안 되니 ‘시행령 정치’가 등장했다. 정부 출범 이후 총선까지 2년을 버티려면 여당 안에서 다른 소리가 나와선 안됐다. 총선에서 이긴 뒤 여대야소 국회에서 법을 만들 것을 전제로 모든 정책을 설계했으니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오는 30일 개원할 22대 국회는 과거와 전혀 다르다. 외국에나 있던 입법부 권력이 우리 정치의 현실이 됐다. 관건은 대통령 권력과의 공존이다. 미국 정치에서는 두 권력의 협력 사례를 수없이 찾을 수 있지만 우리에겐 생소하다. 시작은 순조롭지 않다. 칼자루를 잡은 야당은 공존보다 대결에 관심이 많다. ‘채 상병 특검’이 찾은 윤 대통령의 권력남용 사례를 헌법재판소로 가져가려는 의도를 감추지 않는다. 공수는 바뀌었지만 권력을 혼자 갖겠다는 본질은 매한가지다. 여당은 7월 전당대회 이후 윤 대통령과 거리를 두거나 내홍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윤 대통령에게는 사면초가다. 그렇다고 길이 없는 건 아니다. 김건희 여사 관련 사건을 수사할 검찰 지휘라인을 교체한 것을 보면 윤 대통령은 정면돌파를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것은 공존의 길이 아니다. 남은 건 국민 뿐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국민들은 2027년 대선에서 두 권력의 공존을 위해 노력한 세력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승산은 인류가 오랫동안 구축한 민주주의의 원리를 먼저 터득한 쪽에 있다.

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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