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민의 사이언스&테크놀로지] 어디든 간다, 시키면 다 한다… ‘사족보행 로봇’ 시대 열렸다

Է:2024-05-14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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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이동능력 계단·험지 거뜬
공장 순찰·택배·전쟁터의 짐꾼
인간이 못할 위험한 임무도 척척
본격 상용화… 개발 경쟁도 가열

‘로봇 강아지’가 산업현장에 투입되기 시작했다. 최근 독일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 BMW는 최근 현대·기아차 그룹의 미국 내 계열사 ‘보스턴다이내믹스’가 개발한 사족보행 로봇 ‘스팟(SPOT)’을 영국 내 엔진 생산기지인 ‘햄스 홀 공장’에 정식으로 투입했다. 이미 1년 전부터 스팟을 도입하기 위해 테스트를 해 왔다고 한다. 이곳은 현재 1600여명 직원이 근무 중으로, 지난해 40만개 이상의 엔진을 만들었던 BMW사의 주요 공장 중 하나다. BMW는 현장에 투입된 스팟에 새 이름도 지어줬는데, ‘스포토(SpOTTO)’라고 부르기로 했다. 스팟이란 이름에 BMW의 창립자 중 한 명인 ‘구스타프 오토(Gustav Otto)’의 성을 합쳐서 만들었다고 한다.

다양한 산업현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사족보행 로봇 ‘스팟’. 최근 독일 BMW사는 스팟을 영국 내 엔진 생산기지인 ‘햄스 홀 공장’에 정식으로 투입했다. 보스턴다이내믹스 제공

상용화 단계 들어선 사족보행 로봇

사족보행 로봇은 강아지처럼 네 발로 걷는 로봇을 말한다. 뚜벅뚜벅 걸어 다니는 것 이외에 별다른 일을 할 수 없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는데, 이것으로 어떤 일을 하겠다는 것일까. BMW는 이 로봇으로 공장 구석구석을 순찰하도록 하는 일을 맡았다. 순찰 도중 맡은 임무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공장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유지·보수할 곳을 사전에 파악하는 것. 두 번째는 공장 전체를 촬영하는 것이다. 이렇게 수집한 데이터는 컴퓨터 속에 공장과 똑같은 환경을 시뮬레이션하는 ‘디지털 트윈’ 제작에 쓰인다. 스팟은 화상(카메라), 열(적외선센서), 소리(음향센서) 등을 두루 장착할 수 있으며, 네 발로 걸어 어디든 갈 수 있다. 발을 헛디뎌도 스스로 중심을 잡고, 만일 넘어져도 자기 스스로 일어난다. 복잡한 공장 내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기 최적이다.

최근 사족보행 로봇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그동안 개발 단계에 머물러 있던 사족보행 로봇 기술이 실용화 수준에 도달하면서 이제는 산업현장에 직접 도입하려는 기업이 생겨나고 있다.

국내에서도 다양한 산업현장에서 사족보행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계속 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포스코 광양제철소다. 뜨거운 열기가 쏟아져 나와 인간이 작업하기에 위험이 따르는 고로 주변 안전순찰을 스팟에 맡겼다. 각종 센서를 몸에 붙이고 고로로 다가가 송풍구의 적열 상태, 가스 유출, 냉각수 누수 여부 등을 점검한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모회사 현대·기아차도 스팟을 공장에 도입했다. 2021년 9월부터 스팟을 기아 오토랜드 광명공장 산업현장에 투입했는데, 공장 내부를 순찰하며 고온 위험, 무단침입 등을 감지한다. 이 밖에 현대건설, SK하이닉스 등에서도 건설현장이나 반도체 공장 안전관리에 스팟을 투입한 바 있다. GS건설도 스팟을 각종 공사 현장에서 감리용으로 사용한다고 밝힌 바 있다.

최근엔 사족보행 로봇을 이용해 택배를 보내는 사례도 등장했다. CJ대한통운은 지난달 17일부터 25일까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의 한 아파트에서 스팟을 활용한 ‘택배 라스트마일 로봇배송 실증사업’을 진행했다. 택배기사가 차량에서 스팟을 내려놓은 다음 등에 짊어진 적재함에 배송할 물품을 넣어주면 스팟이 걸어가 물품을 고객의 집 앞까지 내려놓는다. 네 발로 걷기 때문에 계단도 자유자재로 이동할 수 있어 어디든 갈 수 있다. CJ대한통운 측은 앞으로 로봇배송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적용한다면 사람과 로봇이 협력하는 형태로 배송사업을 운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족보행 로봇이 주목받는 이유

사족보행 로봇은 본래는 군사용으로 연구가 시작됐다. 탄약이나 포탄을 등에 싣고 험난한 전장을 누비려면 네 발로 걷는 로봇이 최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스팟 개발사인 보스턴다이내믹스가 미국 해병대 전투연구소(MCW Lab)의 과제를 받아 연구를 시작했으며, 그 이후 20년 이상 지속해서 성능을 높여 왔다. 현재 스팟이 실용화된 사족보행 로봇 중 가장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현재는 많은 로봇 개발자들이 보스턴다이내믹스 뒤를 이어 사족보행 로봇 실용화를 서두르고 있다. 이탈리아기술연구소(IIT)의 ‘하이큐리얼(HyQReal)’,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ETH)의 ‘애니멀(AnyMal)’ 등이 유명하다. 국내 기업 중에선 ‘레인보우로보틱스’가 개발한 ‘RQB’ 시리즈가 잘 알려져 있다.

걸을 수 있는 로봇은 크게 두 종류뿐이다. 사람처럼 두 발로 걷는 ‘이족보행 로봇(휴머노이드 로봇)’, 그리고 동물처럼 네 발로 걸을 수 있는 ‘사족보행 로봇’이다. 휴머노이드 로봇도 최근 크게 주목받고 있으며 다양한 산업현장에 도입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사족보행 로봇과 비교하면 이동 능력 면에서 크게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는 자연계를 봐도 알 수 있다. 일부 영장류를 제외하면 고등동물 대부분은 네 발로 이동한다. 그 편이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기 가장 유리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족보행 로봇은 사람과 함께, 혹은 사람 대신 어디든 갈 수 있기 때문에 다방면에서 활용할 수 있다. 바퀴가 달린 로봇과는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난 이동능력 덕분이다. 계단을 포함해 복잡한 험지도 문제없이 돌파할 수 있다. 그리고 일단 원하는 장소까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면 그다음엔 시킬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다. 각종 카메라와 센서 등을 설치하면 자율적으로 어디든 접근해 정보를 수집할 수 있고, 필요하다면 물건을 집어올릴 수 있는 ‘로봇팔’을 등에 붙여 여러 가지 일을 시킬 수도 있다. 스팟의 경우 방수·방진 기능도 갖추고 있고 영하 20도, 영상 45도까지 견뎌낸다. 즉 계절이나 날씨와 관계없이 실내외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상황에 사족보행 로봇을 이용할 수 있을까. 우선 짐꾼으로서 큰 가치가 있다. 등에 짐을 짊어지고 사람을 따라오도록 한다면 전쟁이나 탐험 등 특수상황에 큰 도움이 된다. 일상생활에선 공항, 쇼핑센터, 캠핑장, 골프장 등의 공간에서 대단히 편리할 것이다. 사람 대신 위험한 현장에 투입해 군사 목적의 정찰, 산업 목적의 순찰 업무 등을 시행할 수 있다. 스팟은 의료용 도우미로도 쓰인 적이 있다. 미국 보스턴의 브링엄앤드우먼스 병원 의료진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4월 당시 스팟을 환자 진료 과정에 투입했다. 로봇 머리 부분에 태블릿PC를 붙여 환자와 의사가 원격으로 대화하도록 돕고, 의약품 운반 등도 맡겼다.

‘로봇이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올 것’이라는 이야기는 이제 식상할 정도다. 제한적이나마 다양한 바퀴형 로봇이 이미 쓰이고 있다. 그러나 사람 바로 옆에서, 언제나 사람을 돕는 로봇은 ‘보행 로봇’ 형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누구나 승용차처럼 사족보행 로봇을 구매해 사회 곳곳에서 사용하는 세상이 조만간 찾아오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전승민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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