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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은 그대로… 3% 인플레에도 한국인들 ‘극한 고통’

[저물가 시대는 끝났다]

게티이미지뱅크

3%대를 넘나드는 높은 물가상승률이 한국 경제의 ‘뉴노멀’로 자리 잡고 있다. 성장이 지체하면서 실질소득 증가에 제동이 걸렸는데 물가 상승 폭만 두드러지는 모습이다. 국민들이 실제로 체감하는 부담은 3%라는 숫자 이상으로 막중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7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2020년=100)는 113.99로 10년 전인 2014년 4월(94.21)보다 19.78포인트 높았다. 상승분 대부분은 최근 3년 동안의 몫이다. 2020년까지 2% 미만을 맴돌았던 한국의 물가상승률은 2021년(2.5%)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고물가 기조에 돌입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2022년에는 물가상승률이 무려 5.1%까지 치솟았고, 지난해 물가상승률도 3.6%를 기록해 고공행진을 지속했다. 올해도 식료품 물가가 인플레이션을 견인하면서 3% 안팎의 상승세가 이어지는 상황이다.

한국의 물가상승률은 숫자 자체로만 봤을 때 세계적 추세보다 양호한 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물가는 2015년부터 2022년 사이 13.5%가 올라 같은 기간 OECD 회원국 평균 물가상승률(25.2%)보다 오히려 상승 폭이 작았다. 변동성이 큰 식료품·에너지 관련 품목을 제외한 근원물가는 2.4~2.5% 수준을 오가고 있다. 유혜미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는 “기본적으로 물가에서 중요한 건 근원물가의 흐름인데 (한국은) 일단 추세적으로는 하락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물가 상승이 무조건 국가 경제에 해로운 것도 아니다. 적당한 수준의 물가 상승은 오히려 경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극심한 디플레이션으로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경기 침체 시절의 일본이 대표적인 반면교사다. 한국은행과 정부는 약 2.0%의 물가상승률을 적정 수준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물가에 대한 국민 인식은 이와는 180도 다르다. 정치권에서는 지난달 총선에서 여당이 패배한 주요 원인 중 하나를 물가 관리 실패로 꼽는다. 정부는 물가 상황을 엄중하게 본 나머지 공공요금 인상조치를 거듭 미루고 있다.

이는 국민이 체감하는 부담이 3%라는 숫자 이상으로 크기 때문이다. 어느새 물가상승률보다 뒤처지기 시작한 소득 증가율이 이 같은 ‘괴리’의 주범으로 지목된다. 고용노동부의 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국내 근로자의 평균 월 소득은 2022년 386만9000원(4.9%), 지난해 396만6000원(2.5%)을 각각 기록했다. 2년 내리 물가상승률이 근로자의 명목임금 증가율을 웃돌았던 셈이다. 물가 상승을 반영한 실질소득 역시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1인당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2021년 3657만원에서 이듬해 3639만원으로 0.5% 감소했다. 지난해 다시 1.8% 증가해 3703만원을 기록했지만 2021년과 비교하면 2년간 고작 46만원 늘었다.

고물가에 가장 취약한 서민계층도 소득 증가에 제동이 걸린 것은 마찬가지였다.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2022년 전체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676만2000원으로 1년 전보다 4.5% 늘었다. 하지만 소득 하위 20%인 1분위 가구의 월 소득은 140만5000원으로 같은 기간 4.3% 증가하는 데 그쳤다. 특히 최근 들어 식료품, 공공요금 등 필수 지출 분야에서 물가 상승세가 두드러졌던 점을 고려하면 서민층의 생활은 곱절로 어려워진 셈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실질적인 가계수지가 나빠지다 보니 국민들은 오히려 생활수준이 떨어졌다고 인식하기 마련”이라면서 “중산층·저소득층의 임금 증가가 동반된 미국의 인플레이션과는 경우가 다르다”고 지적했다.

한창 성장세가 뚜렷했던 1990년대 이전의 한국에서는 물가상승률이 5% 이상을 기록하는 해도 흔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지금처럼 고물가가 민생에 미치는 부담이 크지 않았다. 매년 7%대를 넘나드는 경제 성장에 힘입어 국민소득이 물가상승률 이상으로 빠르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이 이전처럼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코로나19의 기저효과가 작용한 2021년(4.3%)을 제외하면 매년 2% 안팎에 머무르고 있다. 지난해에는 아예 연간 성장률이 1.4%에 그치면서 25년 만에 일본에 뒤지는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그렇다고 임금을 단기간에 대폭 끌어올리는 것도 해결책은 아니다. 가파른 물가 상승에 상응하는 임금 인상이 이뤄질 경우 늘어난 인건비 부담이 다시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고물가-고임금-고물가’의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하 교수는 “실질소득이 줄어든 사람들의 임금 인상 요구가 강해지고, 기업들이 이를 반영해 물건값을 올린다면 고물가 국면은 예상보다 장기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가격이 급등한 일부 품목의 수입 물량을 확대하고 유통 구조를 개선하는 등의 정책으로 체감물가를 낮추는 동시에 국민들의 실질적인 소득을 늘려나가야 고물가 부담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분배와 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실질소득을 높일 수 있다는 조언도 있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내수 진작 차원에서도 분배 구조를 개선하고 저소득층의 생활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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