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의 만남] 1만950일 감사기도 담긴 섬마을 엄마의 일기

‘엄마의 일기가 하늘에 닿으면’ 펴낸 이화정 독일 도르트문트성결교회 목사

이화정 독일 도르트문트성결교회 목사가 지난 23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대회의실에서 어머니의 신앙을 회고하고 있다. 장진현 포토그래퍼

치매를 앓는 엄마의 집을 정돈하다 일기장 더미를 발견한 아들은 예상 밖의 내용에 적잖이 놀란다. 교통사고 이튿날 쓴 일기에 “주님, 이렇게라도 조금 다쳐 감사합니다”란 고백이 담겨서다. 후진하던 택시가 걸어가던 엄마를 덮친 사고였다. 이 사고로 한쪽 다리에 장애 판정을 받아 이후 평생을 지체장애인으로 살았다. 원망도 분노도 없는 엄마의 일기를 보며 아들은 “어떻게 이렇게 사셨을까”라며 탄식한다.

오 권사가 30년간 매일 쓴 일기장 38권. 선율 제공

30년, 1만950일의 기도가 담긴 한 섬마을 여성의 일기가 세상에 나왔다. 가계부와 파일철 등 각종 종이에 빼곡히 적은 일기장 분량은 총 38권. 역경으로 얼룩진 삶에서 감사를 헤아린 이 일기는 아들과 손자녀 인생에 깊은 족적을 남겼다. 최근 ‘엄마의 일기가 하늘에 닿으면’(선율)을 펴낸 아들 이화정(53) 독일 도르트문트성결교회 목사를 지난 23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에서 만났다.


엄마 오순심(79) 권사의 삶은 신산하기 그지없다. 전남 신안군 팔금면 매도에서 태어난 그는 24세에 이웃 섬 안좌도 청년 이현주(90) 집사와 결혼했다. 살림집이 없어 시댁과 친정을 오가던 부부는 일감을 따라 목포와 경기도 평택, 서울 등으로 거처를 옮겼다. 남편이 평택에서 농사일을 하다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겪었음에도 열심히 일했지만 형편은 쉬 나아지지 않았다. 매도로 돌아온 부부는 김 양식에 도전했지만 이마저도 실패한다.

이후 원인 모를 병과 씨름하던 엄마는 한약방에 다녀오다 당고리교회 종소리를 듣는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교회를 찾은 부부는 전도사의 환대에 감동한다. 1984년 8월 26일의 일이다. 이날 이후 엄마의 질병이 낫자 부부는 9살 아들과 함께 1시간 30여분을 걸어 매주 빠짐없이 교회를 찾았다.

살림살이는 여전히 어려웠다. 동네 주민은 한복을 차려입고 교회 가는 엄마를 보며 “옷만 잘 입고 교회 가면 하나님이 빚 갚아주냐”고 조롱했다. 당시 심경을 엄마는 이렇게 기록했다. “참 신기하게도 저는 그럴수록 전도할 의욕과 소망이 더 솟아났어요.” 주일예배뿐 아니라 새벽·수요예배도 빠지지 않던 엄마는 교회 오가는 길에 만나는 이웃마다 복음을 전했다. 집 근처뿐 아니라 교회 인근의 주민 여럿이 엄마의 전도로 기독교인이 됐다.

부모의 신앙을 보고 자란 아들은 목회자이자 선교사로 성장했다. 독일 한인교회 목회에 전념하다 17년 만인 지난해 보훔 루르대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이 목사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 협력선교사로 18개국 선교지와 유럽 코스타 사역을 돕고 있다. 중학생 때부터 객지에서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창 시절을 보낸 그는 최근 일기를 보며 ‘아들이 선교사가 되는 것’이 엄마의 숙원임을 알았다. 이 목사는 “자녀와 손주를 향한 엄마의 기도가 이뤄진 게 참 많다”며 “하나님께서 엄마의 기도를 참 꼼꼼히 응답해주셨다”고 했다.

목포 청호중학교 졸업 당시 이화정 독일 도르트문트성결교회 목사와 오순심(왼쪽) 권사. 선율 제공

엄마의 일기는 무릎 수술을 받은 2019년을 기점으로 확연히 달라진다. 글씨체를 알아보기 힘들어졌고 내용도 두서가 없어졌다. 재활 치료차 잠시 요양병원에 입원했지만 코로나19를 거치며 수술 후유증과 치매가 악화돼 지금껏 아버지와 와병 중이다.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부모를 돌보던 이 목사는 2021년 일기와 함께 가슴 아픈 사실도 마주했다. 그가 친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입원 후 매일 전화했는데 어느 날 ‘이제는 말해야겠다’며 이야기를 꺼내셨다”며 “추후 삼촌과 숙모께 여쭈니 사실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죽을 수밖에 없던 나를 온 힘을 다해 키운 엄마를 보며 삶의 이유와 목회의 목적을 다시금 생각했다”며 “본인들의 헌신으로 우리가 얼마나 큰 믿음을 유산으로 받았는지 알리고자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엄마의 일기를 읽으며 모진 풍파를 겪으며 이 땅과 교회를 지킨 우리네 신앙인의 모습이 떠올랐다”는 이 목사는 “가난한 자로서 천국 소망을 품었던 이 마음을 우리와 다음세대가 신앙 유산으로 계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기록이 있어야 자녀가 부모의 신앙을 계승할 수 있다”며 “한국 기독교인이 신앙 유산을 남기는 데 이 책이 조그마한 보탬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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