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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할아버지 나무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


얼마 전 평창 오대산에 있는 전나무숲에 다녀왔다. 이른 아침에 도착했더니 방문객이 많지 않았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이어지는 전나무숲길은 지저귀는 새 소리와 청아한 계곡물 소리로 가득했고 밤새 정화된 공기는 먼지 한 톨 없이 투명했다. 나는 발걸음 소리가 나지 않는 작은 짐승이 되어 사부작사부작 숲길을 걸었다.

이곳에 온 건 할아버지 나무를 보기 위해서였다. 전나무숲을 가장 오랫동안 지키고 있었던 나무는 약 600년의 장구한 세월을 살다가 2006년 어느 가을밤 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고 한다. 할아버지 나무 앞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동굴처럼 뻥 뚫린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성인 두 명이 들어가도 될 정도로 큰 공간이었다. 이 텅 빈 공간은 물과 양분을 나르는 생명의 통로였고 나무가 600번의 사계절을 나며 고이고이 키워낸 살로 채워져 있었을 것이다. 아주 옛날옛적에 우연히 닿았던 땅에서 전나무 씨앗은 하늘에 닿을 듯 수직으로 자라났고 이제는 다시 땅으로 고이 몸을 뉘었다. 자연사한 나무를 보는 것이 오랜만이어서 손바닥을 펴고 가만히 나무에 대보았다. 나무껍질은 질곡의 세월을 견뎌 온 만큼 단단했고 아침이슬을 머금어 촉촉했다.

나무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수백 년을 살았고, 지금 지구상에 있는 81억 명의 인간보다 먼저 태어난 생명이었다. 차마 가늠조차 할 수 없는 나무의 시간이 경이로워 할아버지 나무 앞에 잠시 더 앉아 시선을 고였다. 그리고 찰나와 같은 인간의 생애를 생각했다. 나무의 시간에 빗대자면 인간의 생애는 한철 피었다 지는 들꽃 같았다. 1㎞에 달하는 숲길 한가운데 서 있는 나를 둘러싼 생명의 탑이 이토록 아름다운 것은, 먼저 세상에 와 사람들을 반겨주고 떠나는 사람들을 배웅하는 나무의 숨결이 숭고하기 때문이었다. 숲속을 빠져나오며 들꽃 같은 나의 생애를 가슴 깊이 담아 집으로 돌아왔다.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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