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강제동원 기업이 국내 법원에 공탁한 돈을 강제동원 피해자 측이 배상금으로 20일 수령했다. 피해자 측이 법원 승소 판결에 근거해 일본 기업 자금을 받아낸 첫 사례다.
히타치조선 강제동원 피해자 이모씨 측은 이날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회사 측이 담보 성격으로 공탁했던 6000만원을 출급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히타치조선이 이씨에게 손해배상금 5000만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을 확정했다.
히타치조선은 앞서 2심 선고가 나온 2019년 1월 배상금 강제집행을 정지해 달라면서 담보 성격으로 6000만원을 공탁했다. 이는 일본 강제동원 기업이 한국 법원에 직접 돈을 낸 유일한 사례로 알려져 있다.
이씨 측을 대리한 법률사무소 헤아림 이민 변호사는 “사실상의 배상이 일본 기업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공탁금을 제외하고도 지연이자 등 4000여만원이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 측은 나머지 돈은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으로부터 받는 안을 검토 중이다.
일본 정부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이날 “극히 유감스럽다”며 “엄중한 항의의 뜻을 한국 정부에 전달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이 사건에서도 한국 재단이 일본 기업 대신 배상하는 ‘제3자 변제 해법’을 적용할 것을 한국 정부에 요구했었다.
이번 사례는 일본 기업이 직접 낸 공탁금을 받은 특수한 사례라 다른 승소 판결에 적용되지는 않는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관련 법령에 따라 절차가 진행된 것”이라고 말했다.
일제 강제동원 사건은 지난 2012년 첫 대법원 승소 판결이 나왔고,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승소가 최종 확정됐다. 대법원은 2018년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까지는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 사유가 있었다고 본다.
이에 따라 최근 대법원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낸 추가 소송에서 잇따라 승소 확정판결을 내리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지난달까지 모두 9건의 대법원 선고가 진행됐고 배상금 원금은 총 50억원에 달한다.
한국 정부는 국내 재단을 통해 배상금을 제3자 변제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일부 피해자들은 제3자 변제 해법을 거부하고 일본 기업의 직접 변제를 요구하고 있다. 국내 재단이 확보했던 재원은 포스코가 출연한 40억원을 포함한 41억여원이라 재원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법적 절차도 순조롭지 않다. 국내 재단은 앞서 피해자들을 위해 배상금을 공탁했지만, 법원은 ‘피해자가 거부하는 제3자 변제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불수리 결정하고 있다.
제3자 변제를 거부한 양금덕 김성주 할머니가 미쓰비시중공업의 상표권 등 한국 내 자산을 매각해 달라며 낸 신청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만약 이 사건에서 최종 승소할 경우 피해자 측은 강제집행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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